이 곳은 늘 파란만장한 곳이다. 주변에는 다른 동료나 상사, 후배들도 있고 뒤에서 일이나 열심히 하고 있는 사무직들도 있고... 바깥에서 보기엔 아마 이 곳도 그저 흔한 회사처럼 보일 뿐이겠지. 물론 그렇기에 이 곳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곳에 들어온 이후부터는 아마 그런 생각을 한 것을 후회하게 되지 않을까.
그래도 뭐 장점이라면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은, 적어도 일할 수 있는 곳이 생긴다는 건 좋은 일이기도 할 것이다. 특히나 이런 곳에서 일했다고 하면 남들이 조금은 신기한 사람이네, 라고 생각해 줄 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물론 그 전에 이곳에서 제대로 퇴직을 할 수 있다고 할 때의 가정 하에서 말이다. 과연 여기서 제대로 퇴직하고 자유의 삶을 살고 있을 존재는 몇이나 될까? 그런 존재가 있기는 할까? 지금의 내가 생각하기엔 너무나 먼 일이다.
...아무튼, 관리자가 일을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이나 하는 게 우리들의 할 일이겠지. 그래도 이런 일을 하고 있으면 저기에서 아주 조용히 일하는 사무직보단 차라리 대우가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 녀석들은 단순히 권총같은 것이나 호신용으로 주어지는데 우리들은 관리자의 눈에 잘 띈다면 적어도 그것들보단 좋은 옷이나 무기들을 지급받을 수 있으니까. 물론 그런 무기들도 다 공평하게 주어지는 건 아니니 더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지.
나는 열심히 일했기에 그에 걸맞는 장비들을 지급받았다. 덕분에 유독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굴려지는 기분도 들지만, 아무튼 남들보다 더 중요한 존재가 된다는 건 그만큼 내 역할이 이 곳에서 매우 중요해진다는 뜻이나 다름없으니까 마냥 나쁘게만 생각할 일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내가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을 때 관리자가 이것저것 챙겨주는 일이 많았으니.
이렇게 혼자서 주절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마침 관리자도 내가 가만히 있는 게 신경쓰였는지 격리실에 가서 환상체의 상태를 확인해보라고 한다. 보통 환상체를 맡을 때 특정 환상체만 집중적으로 맡는 일이 많긴 했는데, 요즘은 이것저것 바쁜 일이 많은 모양인지 평소에 자주 볼 일이 없는 환상체를 담당할 때도 있었다. 뭐, 늘 똑같은 것만 보는 것보단 다양하게 보는 것이 나쁜 건 아니겠지. 나중에 혹시라도 대비해서 돌파구를 찾을 때에도 정보는 늘 큰 도움이 되니까. 아무튼, 이번에 맡을 녀석은...
마탄의 사수? 꽤나 오랜만에 보는 존재인 것 같은데. 이 존재는 '크게' 우리들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 아니, 사실 관리자가 명령을 잘못 내리면 '크게' 해를 끼치긴 하지만 그런 건 애초에 관리자가 잘못한 거니까, 그 환상체에게는 큰 잘못이 없겠지. 우리들도 가끔씩 명령을 듣기 싫을 때 반항하는 것처럼, 환상체 녀석들도 자신들이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그렇게 변덕을 부리곤 하니까.
생각해보니 그렇게 변덕을 부려서 빠져나온 녀석들이 몇이었는지, 그 녀석들을 다시 격리실로 돌려보낸 것도 몇 번이었는지 세어보기도 힘들 정도다. 아니, 굳이 세어보려고 하지도 않았지만.
아무튼, 늘 맡던 환상체도 아니니 나름 새로운 기분으로 관리자의 명령을 따르러 가보자. 대충 관리자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이런저런 잔소리를 들을 일은 없으니까, 그런 건 나름 이 회사에서 일하며 꽤나 좋다고 생각하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오로지 관리자의 명령만 들으면 된다, 스스로 무언가를 딱히 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주변의 분위기에 같이 휩쓸려 다니면 큰 문제는 없다-' 이런 것들.
마탄의 사수가 있는 격리실은 조금 신기한 기운이 느껴진다. 흔히 말하는 그런 암흑물질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될까, 그걸 또 어떻게 설명해야 될 지 모르겠는 기운이긴 하지만 마탄의 사수를 실제로 한 번이라도 본 존재라면 대충 어떤 느낌인지 알고 있으리라. 아무튼, 격리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서 마탄의 사수를 맞이한다.
그런데...
마탄의 사수의 모습이 오늘따라 조금 특이하다. 마치, 상의를 입지 않은 상반신 탈의 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조금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나름 그런 모습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런 모습을 언제 또 볼 수 있겠는가?
역시 장총을 사용해서 그런지, 상반신의 근육이 꽤나 멋지게 자리잡고 있었다. 보통 저런 근육이나 복근같은 걸 가지려면 정말 오랜 시간을 들여서 노력해야 되는데 저 사수는 그런 노력을 했을까. 아니면 그를 이루는 물질들이 저런 근육을 연상시키도록 자연스럽게 변화한 걸까. 만약 후자라면, 좀 배워보고 싶을지도.
늘 한결같은 모습이라서 그런지, 환상체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건 역시 어렵지 않았다. 이 회사에 존재하는 모든 환상체가 이 사수처럼 얌전하고 나름 긍정적인 환상체였으면 좋았을 텐데. 적어도 내가 맡고 있는 환상체 이외의 다른 환상체들은 꽤나 탈주를 많이 하는 경우도 있고, 조금이라도 잘못 조사하거나 반응을 잘못 주면 그대로 먹잇감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할 정도였으니. 실제로 나도 그런 일의 뒷처리를 위해 다른 부서로 잠깐 불려간 적도 있었다. 뭐, 그것도 따지면 관리자의 잘못이겠지만.
내가 열심히 기록을 남기고 있는 동안, 사수는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빤히 바라보고 있으니 조금 신경쓰이긴 하지만, 뭐- 같이 바라봐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 그 눈빛에 마주하듯 같이 빤히 바라보기도 했는데, 어째 분명 나는 눈을 바라보려고 했는데 자연스럽게 시선이 사수의 가슴으로 향한다.
...솔직히, 좀 멋있긴 하니까. 다행히 사수도 그런 자신의 몸이 멋있다는 걸 인정이라도 하는 것마냥 내 시선이 가슴으로 가는 것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시선이 그쪽에 있건말건 자신의 장총을 다듬고 있는 모습이 종종 보였을 뿐.
그러고보니 저 장총, 관리자가 어떤 직원에게 쥐어준 적이 있었다. 같은 부서는 아니었어서 대충 소문으로만 듣긴 했지만, 저 총에서 나오는 마탄이 환상체와 직원을 전부 가리지 않고 관통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 관리자도 직원도 그렇게 저 총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소문이었다. 뭐, 이 곳에서 직원 하나하나가 소중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런 소문으로 인해 총을 사용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나름 소중하긴 한 모양이다. 사실 갑자기 생길 급한 일에 불려갈 직원이 사라지는 건 좀 치명적이긴 할 지도.
그래도 다른 것들은 나름 쓸만한 것 같아서 이 사수의 옷을 본딴 복장을 입은 직원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뭐, 그런 거라도 도움이 된다니 다행이다.
이것저것 열심히 조사하고 기록을 남기고 격리실에서 빠져나가려고 할 때, 사수의 이상한 기운이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기운 사이에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건 바로 사수가 종종 피워대곤 하던 파이프였다. 이 곳에서 얌전히 조사해준 것에 대한 보답인가? 싶은 마음과 이런 걸 받아도 크게 나쁠 건 없으니- 라는 마음에 그 파이프를 받아들여 입에 가볍게 물어본다.
...으, 이거 꽤나 독한 것 같은데, 그래도 아예 못 피울 정도는 아닌 것 같고... 그나저나 이 안에 들어있는 건 무엇일까? 이 사수가 평범한 무언가를 피워댈 것 같지는 않고... 사수의 기운을 사수가 직접 피워대는 걸까? 여러모로 이것도 참 궁금하게 만든다.
아무튼, 지금은 다른 일도 해야 되니까... 사수와 가벼운 작별인사를 나누고 입에 파이프를 문 채 격리실 밖으로 나간다. 이 파이프를 보고 나중에 관리자가 다시 사수에게 일을 맡길지도 모르겠네.
그러면... 좀 즐거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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