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야, 이렇게 말이 잘 통하는 존재는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것 같지 말입니다? 그동안 만난 분들이 워낙 저를 경계하고 무서워하고 그랬던지라- 제대로 말을 하고 싶어도 말을 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러니 아무쪼록 각오하셔야 될 겁니다? 제가 얼마나 이야기 보따리를 잔뜩 풀어버릴지 모르니까요, 크핫!
뭐어- 그래도 서로에게 시간이라는 건 늘 중요한 거니까, 적당히 잘 끊어보도록 노력은 하겠습니다-? 아무튼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곤 하니까 말이죠!
일단 간단하게 제 소개부터 할까요? 이미 소개하긴 했지만- 그래도 다시 소개하는 과정에서 처음엔 듣지 못했던 이런저런 제 이야기들을 더 들을 수도 있는 법이니 말이죠. 일단 제 이름이 네르-노르인 것 정도는 아실테고, 이 네르-노르가 온전히 제 이름이라고 하면 사실 그건 아니랍니다? 저는 네르고, 제 어깨에서 항상 주변을 관찰해주는 이 그림자 까마귀가 노르거든요. 합쳐서 네르-노르. 정말 재미있는 이름이지 않습니까? 아하핫.
처음에는 다른 이름이 있었을 것 같지만- 지금은 그 다른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도 까먹었답니다. 네르-노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든 것도 왠지 이 이름이 마음에 들고 입에 착착 감기는 것 같아서 자연스럽게 이게 제 이름이 되었지요. 나름대로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그쪽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죠-?
이름은 이제 좀 더 세부적으로 알려드렸으니, 이번엔 그동안 제가 하던 일을 알려드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저는- 살아있는 분들의 말을 빌려서 쉽게 표현하자면 '저승사자'같은 일을 하고 있답니다. 누군가가 죽었거나, 아니면 누군가가 죽음의 문턱에서 헤매고 있을 때 살며시 앞에 나타나선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하고 있죠. 그래서 평소에 평범하게 잘 지내고 있는 존재들에겐 제 모습이 웬만해선 보이지 않습니다. 말씀드렸듯 저는 죽음과 가까운 자들에게만 모습을 드러내니까요.
하지만? 제가 이런 일을 하지 않을 땐? 멀쩡히 잘 살아있는 존재들에게도 모습을 잘 드러낸답니다. 마치 지금처럼 말이죠! 예전에는 종종 휴가같은 걸 내서 남들에게 모습을 드러내곤 했는데, 요즘은 그냥 제멋대로 잘 살아가고 있어서 말입니다, 크크.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십쇼- 겉으로는 이렇게 놀기만 하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까요. 지금도 저 생사의 갈림길 속에서 발걸음을 쉽사리 옮기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는 존재들이 어렴풋이 보이네요. (아마 그쪽에겐 보이지 않겠지만요-)
이런 일을 하게 된 계기같은 건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쁘지 않더군요. 일단 제가 직접 누군가를 죽이는 것도 아닌지라 죄책감같은 것도 없으니까 마음이 편하다고 할지? 만약 제가 직접 누군가를 죽인 뒤에 그 누군가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것이라면 조금 찝찝했을 것 같지만- 말씀드렸듯 저는 단순히 누군가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역할만 하고 있는 것이라서 말입니다.
보통 일을 할 때 재미를 느끼는 경우도 있나요? 일단 저는 솔직히 재미도 있긴 했는데 말입니다, 하핫. 뭐어- 딱히 엄청 이상한 쪽으로 재미를 느끼는 건 아니고 단순히 죽음에 대해 부정하거나 여전히 자기가 죽음의 문턱 앞에 있다는 걸 부정하는 듯한 모양새를 보고 있으면 조금 재미있거든요. 그쪽도 이해할 겁니다. 누구나 다 자기가 죽고 싶어서 죽는 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자신은 아직 죽을 수 없다며 부정한다던지, 아니면 자기가 지금 죽은 거냐면서 의아해 한다던지- 정말 다양한 모습들을 볼 수 있는 게 꽤나 재미있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제가 그쪽의 저승을 안내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사실 불멸자들을 이끌어갈 확률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일테니 그냥 농담 정도로 흘려들으셔도 됩니다-
여행을 하게 된 계기도 어쩌면 제가 하는 일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계속 한 곳에 머무르며 그 곳에서만 저승으로 누군가를 안내하는 것보단 좀 더 다양한 분들을 안내하는 게 더 재밌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말이죠. 혹시 모르지 않겠습니까? 여행을 하는데 옆에 동행자가 있으면 혼자 여행하는 것과는 색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언젠가 자신이 죽음을 맞이했을 때 과거에 만났던 존재가 저승으로 안내해준다고 생각하면 조금이나마 부담을 덜할 수 있을 테니까요. 뭐어- 모든 존재가 다 그렇지만은 않겠지만, 약간의 가능성이라도 생각해두는 게 나쁜 일은 아니죠.
그리고 앞서 말했던 것처럼, 제가 누군가를 만나서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하는 그런 성격도 여행에 큰 영향을 끼쳤겠죠. 아무튼 일을 하는 쪽으로도, 제 단순한 개인적인 즐거움으로도 전부 만족시켜주는 것이 이 '여행'이라는 것이기 때문에- 제가 여행을 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덕분에 그쪽도 만나게 되었으니, 확실히 여행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혹시 주변에 죽음을 앞두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저에게 살짝 알려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제가 평온하게 마지막까지 잘- 안내해 드릴테니까요- 이런 건 정말 잘 하니까 한번쯤 믿어보셔도 괜찮을겁니다?
흠흠, 아무튼- 더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질문해보셔도 됩니다. 웬만한 것들은 다 알려줄 수 있을 정도로 워낙 비밀이 없는 개방적인 저승사자라서 말이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지 말입니다! 이 네르-노르, 영원한 당신의 친구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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