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고통만이 기다리고 있는 연구소에서 빠져나와 정처없이 헤매고 있다. 바깥으로 탈출한다고 해서 좋은 일만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 연구소 안에서 계속 고통받는 것보단 차라리 이렇게 밖을 돌아다니는 게 더 나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예상했던 대로 아무런 목적 없이 바깥으로 나오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오늘 하루 정도는 편하게 보낼 수 있을만한 곳을 찾아야 되는데... 그런 곳이 존재하긴 할지 의문이다. 날이 저물 때까지 일단은 계속해서 주변을 둘러보는 수밖에 없겠지.
거의 해가 가라앉을 때쯤, 정말 우연히 어떤 건물을 발견하게 되었다. 많이 낡은 걸 보니 버려진 지 꽤 오래 된 것 같은데 일단은 저기서 하루를 보내는 게 좋을 것 같다. 연구원들이 쉽게 눈치채지 못할 것 같은 곳이기도 하고, 그렇게 으스스한 분위기의 건물도 아니었으니 괜찮을 것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오고 나서야 조금이나마 마음을 편하게 놓는다. 이 곳이라면, 연구원들이 적어도 날 발견하지 못하겠지. 애초에 나를 찾으러 오긴 할까? 다른 녀석을 실험체로 삼아서 다시 연구를 진행하지 않을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해가 완전히 아래로 가라앉고, 하얀 달빛만이 건물 안을 비추고 있을 때 이제 좀 완전히 편하게 쉴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어디선가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 누구다...?"
말을 꺼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은 채, 그저 약간의 인기척만이 계속해서 느껴질 뿐이었다. 아무래도 이 인기척을 만들고 있는 존재도 나의 존재를 눈치채고 경계하고 있는 듯한 모양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계속 있으면 서로에게 편하지 않을텐데...
주변을 둘러보며 인기척이 느껴진 곳으로 다가가는데, 다가갈수록 무언가 차가운 기운이 느껴진다. 날씨가 춥긴 했지만, 적어도 이 건물 안으로 들어오면서 조금은 따뜻해지긴 했는데, 마치 바깥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추웠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자 이제 조금씩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는데, 팔이 날개로 된 검은 새의 형상을 가진 존재였다. 마치... 나처럼 실험체로 지내다가 바깥으로 도망쳐나온 것 같은 모습이었다.
특히 자신보다 더 심각한 모습이었는데, 온몸이 상처투성이에 지금도 몇몇 상처에서는 피가 계속 흐르고 있었다. 자신보다... 더 심한 실험을 당하고 있는 상태에서 바깥으로 탈출한 걸까?
"...괜찮다...?"
"..."
"어디에서 왔다?"
"..."
계속해서 말을 걸어도 대답이 없었는데, 말을 안 한다기보단 말을 못 하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이 말을 건넬 때마다 검은 새의 형상을 가진 존재는 고개를 갸웃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는데 일부러 입을 목도리로 가리고 있는 이유도 자신이 말을 못 한다는 걸 암시하는 것이었을까.
"말을 하지 못한다?"
그러자 검은 새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실험의 부작용으로 말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일지도. 아니면 말을 아예 못 한다기보단 일시적으로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일 수도 있을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에 있는 돌같은 무언가를 건네서 땅에다가 긁어서 적어보라고 하자, 바로 적는 걸 보아서는 확실히 일시적으로 말을 못 하는 상태라는 걸 파악할 수 있었다. 왜냐면, 그렇게 적어주었으니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말이 나오지 않는다.」
"실험의 부작용이다. 곧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다 검은 새가 나를 힐끗 바라보더니 다시 바닥에 무언가 적기 시작했다.
「이름, 가지고 있는지?」
" '야' 라고만 들었다."
「그건 아마 정확한 이름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
「이름이 없는 존재를 부를 때 그렇게 부르는 모습을 보았다.」
"..."
「나는, 옵시디언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쪽은, 특별한 이름으로 불리긴 했구나. 살짝은 부러운 마음도 없진 않았지만, 연구원들이 불러준 이름을 부러워할 이유도 없지. 그나저나, 그 상처부터 어떻게 치료해야 될 것 같은데...
"...목도리, 살짝 찢어도 된다?"
검은 새는 자신의 상처를 바라보곤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아무래도 자신이 봐도 치료해야 될 필요성을 느끼긴 한 듯. 물론 제대로 된 치료를 해 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간단하게나마 저 출혈 정도는 막아야 될 것 같았다.
목도리를 조금 찢어서 출혈 부위에 둘러주자, 검은 새는 고맙다는 듯 싱긋 눈웃음을 지으며 미소를 보였다. 처음에는 서로 경계하는 모습이었지만, 이렇게 도와주니까 믿어도 되는 존재라고 마음을 바꾼 듯.
「고맙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다-"
「나도... 그 쪽을 도와주고 싶다.」
"일단 지금은 검은 새가 편하게 쉬는 게 먼저다."
「그쪽도 여기까지 도망쳐오느라 고생 많았을 것이다.」
"그렇긴 하다-"
시간도 꽤 깊었는데, 다음에는 또 어디까지 가야 될 지 모르니까... 이제 쉬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 검은 새를 보며 같이 쉬자고 말을 건넨다. 검은 새는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쉬라고 날개를 펼쳐보이는 모습이다.
「많이 피곤했을테니, 먼저 쉬어라.」
"아니다. 그 쪽이 먼저 쉬어도 된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한 건 나보다 그쪽이니, 그쪽이 먼저 쉬는 게 좋다.」
"알겠다!"
검은 새의 활짝 편 날개 사이로 몸을 웅크린 채 조금씩 마음을 편하게 잡고 쉬기 시작한다. 검은 새도 날개를 조금씩 접으며 자신을 감싸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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