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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로로/일반

[조루루] Re:mind


2016/02/05 - [케로로/일반] - [조루루] Re:birth








그저 본능이 이끄는 대로, 내 몸이 움직이고 있었다. …아니, 이젠 이 개조된 몸이 내 몸인건가. 그렇겠지, 내가 이 몸의 새로운 주인이 된 거겠지. 한순간에 이루어진 일이라 여전히 익숙하진 않지만, 예전의 약해빠진 모습이 아닌 지금의 누구보다 강력한 모습으로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일단은 그렇게 믿고 있다. 물론 아직 이 새로운 몸에 적응하는 기간이 좀 필요하겠지만.


그나저나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걸까. 여러 존재들이 북적이는 한밤중의 여러 불빛이 켜진 도시를 벗어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조금씩 사람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한적하고 적막한 곳으로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달까. 그리고 조금씩 알 수 없는 목적지로 걸어갈수록 알 수 없는 기억들이 머릿속에서 떠오르고 있었다. 아마 이건 나 자신의 기억이 아닌, 「내가 여기에 스며들기 전부터 이 몸에 남아있던 기억」 이 아닐까. 어쨌든 이 기억 속에는 어떤 존재가 눈 앞에 보였다. 당연히 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존재이기에 누구인지 알 수 없었지만.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아마 예전의 이 몸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나 자신과 어떤 날렵한 존재가 서로 싸움을 벌이고 있었던 것 같다. 땅에 물웅덩이같은 게 있는 걸로 봐서는 아마 비가 내리는 날이었던 듯. 특이하게 분명 비가 내리면 구름이 가득해져서 달이 보이지 않을텐데, 어째서인지 붉은 달이 붉은 달빛을 비추고 있었다. 이 세상은 아직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가득하구나.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 지 알 수도 없이 계속 싸움은 지속되었고, 아까 생겼던 상처 때문인지 결국 예전의 나 자신은 악화된 상처에 의해 쓰러지고 결국 그 자리에서 마무리를 당했다. 그리고 땅에 고여있던 물웅덩이에는 물 대신 피가 그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이 몸에 남아있는 기억은 여기까지였다. 그렇구나, 나름 잔인하네. 그리고 예전의 이 몸의 주인은 상당히 강력한 녀석이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리고 새로운 의문이 하나 들기 시작했다.

「과연 지금의 나 자신이 예전의 나 자신이 만족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을 발휘하는 게 가능할까」 라는 점. 난 그저 평범한 존재에 불과하니까, 그런 훈련같은 건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으니까. 오히려 예전의 나 자신에게 민폐를 끼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함이 가득차기 시작했다. 또 이 기억속의 존재에게 베어져서 새로운 복수를 위해 다른 존재가 이 몸을 맡게 되는 건 아닐까.


…….


………….



그렇게 될 바엔, 차라리 내가 여기서 기억속의 존재를 베어버리고 말겠어. 이 몸에 복수의 씨앗을 계속 심어가는 것보단, 여기서 모든 걸 마무리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 이 몸을 맡게 될 새로운 존재에게 비극적인 결말만이 가득한 기억을 계속 남기는 건 분명 좋지 않은 행동이니까.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 발걸음이 빨라졌다. 아마 빨리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해서일까.

그렇게 도시와는 계속 멀어져갔고, 내가 계속 걸어가고 있는 이 주변에는 부서진 건물들, 마치 폭풍에 휩쓸린 듯 온통 망가져있는 것들만이 이 장소를 장식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참 웃기기도 하다. 분명 저 곳에는 도시가 있는데, 이 곳은 한 때 도시였던 곳이니까. 혹시, 여기에 어떤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낼 수 없을 듯한 흔적만이 이 곳에 가득할 뿐.


계속 이 황량한 폐허가 된 도시를 걷고 있는데, 저 멀리 무덤같이 생긴 것을 하나 발견했다. 황량한 모습과는 달리 무덤은 꽤 최근에 만들어진 듯 깔끔한 모습이었는데, 그 무덤 앞에는 어떤 존재가 쓰러져있는 것 같았다. 움직임이 없는 걸 보니 아마 무덤 안으로 넣으려다가 넣을 여건이 되지 않았는지 그대로 바깥에 둔 듯한데, 이번에도 특이하게 쓰러진 존재의 상태가 전혀 변하지 않고 원래의 모습으로 잠들어 있었다. 정말 어떤 존재가 보면 '죽었다' 라기보단 '잠들어있다' 라고 착각할 수도 있을 정도로 절묘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 존재의 생김새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무덤 앞에 쓰러져있는 존재는…


다름아닌 나 자신이 그 앞에서 잠들어있는 것이었다. 아니, 나 자신이라고 해야되는 걸까…. 아마 누군가가 나 자신을 찾아주길 바라며 이 곳에서 눈을 감은 건 아닐까. 내 생각으론 몇십, 몇백 년이 지났을텐데도 아무것도 없는 이 곳에서 이렇게 변한 모습 하나도 없이 잠들어있다니, 정말로 자신의 원한을 다른 존재가 풀어줬으면 하는 게 느껴졌다.



이제 목표는, 이 몸에 남아있는 기억 속 그 존재를 만나는 것이겠지? 그래야 복수를 하던가, 그 존재의 또다른 희생양이 되던가 할 수 있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