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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녹터너스 / 신데렐라] 220418

 

 

 


 

 

꽃들이 환하게 피어오른 따스한 오후.

잠깐 도시의 북적거리는 분위기 속에서 벗어나 한적한 숲의 공터에서 화려한 분위기를 즐긴다.

 

사실 이 숲 자체는 도시의 생명체들이 주로 찾아오는 숲이지만, 내가 쉬고 있는 이 공터만큼은 이 숲에 대해 웬만한 지식이나 방문 경험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찾기 어려운 곳에 있는 장소였기 때문에 생명체를 신경쓰지 않고 쉴 수 있는 것이 좋은 명당이었다. 물론 이 곳을 찾아오는 생명체가 있다면 그 생명체를 물러나게 하지 않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며 조금은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만 말이다.

과거에 비해 날씨가 따뜻해지는 시기가 빨라져서 그런지 꽃이 피는 시기도 과거보다 더 빨라진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만큼 기후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는 것은 늘 좋은 것만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는 있지만, 당장은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게 만들 정도로 아름다운 경치에 압도당하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화려한 풍경과 따스한 날씨 속에서 나른해지는 기분을 느끼고 있던 때, 어디선가 기척이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 느껴지는 이 기척은 단순히 인간과도 같은 그런 일반적인 생명체의 기척과는 다른 느낌과 소리가 들린다고 할 수 있을까. 마치, 무언가가 기어오듯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조금씩 가까이 들려오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그 소리가 들리는 곳을 바라보았을 때, 낯설지 않은 얼굴의 존재가 이 곳을 향해 오다가 멈칫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멈춰있지 말고 부담없이 다가오라는 듯 손짓하자, 그제서야 다시 조금씩 이 곳을 향해 달려오는 존재.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군."

"그러게요. 아무리 봐도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푸흐. 다들 그렇게 생각하곤 하지."

 

 

웬만한 생명체들은 나를 보며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이런 평온한 분위기를 즐기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라고. 사실 나도 이런 분위기를 언제부터 즐기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알고 있지는 않지만, 아무튼 이런 분위기를 즐기게 된 것이 마냥 나쁜 변화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오히려 좋은 변화라고 할 수 있겠지. 이런 변화 덕분에 다양한 생명체들과 만날 수 있게 되었고, 다양한 생명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살아가는 것과는 어떤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비교해보고 공감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게 되었으니까.

그렇게 조금씩 이 분위기 속에 서로 녹아들고 있다가 서로 완전히 편해진 기분이 들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먼저 꺼내놓았다.

 

 

"편하게 말을 놓아도 된다."

"그러면- 잘 부탁할게. 손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빌려줄 수 있어."

"후후, 만약 필요하다면 부르도록 하지. 그나저나, 이 곳에도 청소하러 온 건가?"

"에이, 그럴리가! 청소하러 왔으면 그 옷을 입었겠지만- 보다시피 안 입고 있으니까."

 

 

그 말을 듣고 다시 이 생명체를 보고 있으니 확실히 메이드복을 입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옷을 입고 있지 않은, 누가봐도 지네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을 듯한 외형으로... 정말 가볍게 이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온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긴, 늘 청소만 하고 다니면 스트레스받겠지.' 라고 조용히 생각하며 다시 말을 꺼냈다.

 

 

"저번에 소개를 했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군. 뭐, 한번 더 해도 나쁠 건 없겠지. 녹터너스라고 한다."

"이렇게 자기 정보에 대한 것도 꽁꽁 숨겨두며 다니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니. 정말 놀라운 것들 투성이라니까."

"원래 더 친근하게 다가가고 싶으면 먼저 다가가는 게 좋다고 주변에서 많이들 그러더군."

"주변에 누가 있었는진 몰라도, 좋은 친구들을 둔 모양이네. 아무튼 내 이름은..."

 

 

잠깐 고민하다가 마치 툭 털어놓듯이 이름을 꺼내는 존재.

 

 

"신데렐라라고 불러 줘. 워낙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름 꺼내면 좀 귀찮아질 정도라니까."

"어떤 이유인지는 알 것 같군. 그래도 너와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알아줬으면."

"아무래도 청소 덕분이려나? 사실 청소도 뭐- 엄청 능숙한 편은 아니지만."

"흠? 그것도 의외군."

 

 

가볍게 어깨를 으쓱거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들과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꺼내놓는 신데렐라.

 

 

"저번에도 보긴 했겠지만- 이런저런 실수도 좀 있기도 하고... 그래서 좀 간단한 잡일들 위주로 한다고 할 수 있으려나."

"실수는 본 적 없었는데. 뭐든지 다 완벽하게 청소하는 모습만 보았으니까."

"그렇게 말해주니 좀 고마운걸. 물론- 더 열심히 해야겠지."

 

 

청소라는 게 마냥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신데렐라와 함께 저번에 그 장소를 청소하기 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청소를 직접 하게 된 이후부터는 청소와 관련된 일을 하는 존재에 대해 더 놀랍고 존경심같은 것이 생겼다. 아무리 간단한 잡일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일을 능숙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내세울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주변의 경치를 즐기고 분위기를 즐기고 있다가 슬쩍 옆을 바라보고 있으니, 신데렐라는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내리쬐는 태양의 햇빛을 즐기고 있는 듯한 모습처럼 보였다. 이 곳이 햇빛도 잘 들어오는 곳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햇빛을 받으러 오는 것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이런 일광욕을 좋아하는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햇빛을 좋아하는 모양이군."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랄까? 보통 다른 존재들은 내 모습을 보곤 햇빛이랑 안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하던데, 난 그렇지 않거든."

"지네의 모습이라서 그런걸까. 나는 그런 고정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별로 신경쓰지 않지만."

"그렇게 생각해주면 편하고 좋지. 워낙 이런저런 해명아닌 해명을 하는 게 번거롭기도 하고."

"후후, 해명이라. 잘못한 것도 아닌데."

"그러니깐."

 

 

청소를 하던 때와는 다른, 의외로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것에 내심 놀라기도 했다. 청소와는 거리가 먼 존재와 청소를 일처럼 하는 존재의 극과 극에 있는 사이인데도 그 안에 잡동사니처럼 쌓여있는 것들이 서로의 연결고리가 되어주고 있는 느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신데렐라의 모습을 보며 조금은 흥미롭기도 했다.

 

 

"메이드복을 입지 않은 맨몸이 꽤나 탄탄하군."

"아무래도 이런 신체를 받아주는 몸이 되려면, 그만큼 탄탄해야 될 테니까. 덕분에 몸 좋다는 얘기도 많이 듣지만."

"확실히 몸이 좋아 보이는군. 덕분에 청소하는 걸로 받아준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정작 옷입는 건 엄청 복잡하고 귀찮아서 말이지."

"혼자서는 아무래도 힘들 수밖에 없겠지."

"그래서 일할 때 말고는 그 옷 쳐다보기도 싫을 정도라니깐."

"하긴, 이렇게 보고 있으니 옷을 안 입은 게 제일 편해보이고 보기에도 마음에 드는군."

"은근히 옷을 안 입는 거에 관심이 많아 보이는데? 뭐- 보아하니 옷을 아예 안 입을 것 같은 모습이긴 하지만."

"나같은 메카닉에겐 옷은 필요하지 않지."

"확실히 그럴 것 같긴 하네."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여러개의 팔들을 이용해 나의 몸을 톡톡 건드리다 다시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왠지 호기심이 생긴 듯한 신데렐라. 그리고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나.

 

 

"메카닉? 이라고 했던가? 그런 삶을 살아오면서 불편한 건 있었는지 궁금한데."

"아무래도 이런 종족에 대해서는 많은 존재들이 호기심을 가지곤 하지. 사실 크게 불편한 건 없었다."

"다행이네. 그래도 이런저런 질문 중에서 좀 귀찮거나 번거로운 질문 정도는 있었겠지?"

"물론. 뭐, 자연스럽게 넘어가곤 했으니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혹시 괜찮으면- 좀 더 많은 얘기들을 들어보고 싶어."

"원한다면, 무엇이든."

 

 

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겠군.

그래도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와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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