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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 of the Lamb / 어린 양 & 기다리는 자] 220902

 

 


2022.08.29 - [기타] - [Cult of the Lamb / 어린 양 & 기다리는 자] 220829


 

 

"지도자님! 늘 지도자님이 베풀어주시는 영광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지만, 저희들이 열심히 일을 한 보람을 느끼고 싶습니다! 휴식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휴식을 원하는 추종자들과 그들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어린 양. 곧 그의 사원에서 성일의 의식을 열어 하루 동안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도록 만들어주었다. 의식이 완료되자마자 추종자들은 어린 양이 내려준 교단에서의 옷이 아닌, 마치 여름휴가를 나온 듯 가벼운 셔츠 차림으로 교단의 내부를 이곳저곳 돌아다닌다. 물론 그렇게 돌아다니는 추종자들 사이에서는, 기다리는 자도 있었지만 말이다.

 

 

"하루종일 노동만 시키는 줄 알았더니, 이런 자비를 베풀줄도 아는군. 그 넘치는 자비를 그 곳에서도 발휘해서 그 자리에서 죽여주었으면 좋았으련만."

 

 

한결같은 투덜거리는 모습에 어린 양도 어깨를 으쓱거리기만 할 뿐 딱히 다른 이야기를 꺼내진 않았다. 아마 기다리는 자도 자신의 말에 어떤 대답을 기대했던 모습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저 이 성일의 의식을 통해 하루동안은 잠시나마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편으론 그 이후로 기다리는 자에게 다가와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는 어린 양의 추종자들도 있었는데, 그렇게 누군가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 기다리는 자에겐 꽤나 귀찮고 번거로운 모양이었다.

 

 

"가련한 어린 양아. ...하아, 내가 네 녀석에게 이렇게 부탁을 하게 될 날이 올 거라곤 정말 생각도 못 했고, 직접 이렇게 겪고 있으니 정말 끔찍하긴 하다만... 아무튼 부탁하고 싶은 것이 생겼군."

 

 

어린 양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에게 하고 싶은 부탁이 무엇이냐며 물었고, 기다리는 자는 주변을 둘러보며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고 있는 추종자들을 고갯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자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도록 네가 노력해 주었으면 좋겠다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냐며 다시 어깨를 으쓱거리는 어린 양과, 그런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곤 (마치 예상했다는 듯) 다시 말을 꺼내서 그럴싸한 이유를 꺼내기 시작하는 기다리는 자의 모습이 스쳐지나간다.

 

 

"자꾸 주변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불편하단 말이다. 내가 한때 굉장한 힘을 가졌던 건 부정할 수 없지만, 지금은 마땅히 그런 존재도 아닐 뿐더러... 아무튼, 그렇단 말이다. 이 망할 어린 양아."

 

 

기다리는 자의 이유를 어린 양도 아무튼 그럴싸하다고 느꼈는지 고개를 끄덕거리곤 주변의 추종자들에게 다가가선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는 모습을 보였다. 추종자들도 처음엔 좀 갸웃하다가도 곧 어린 양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어린 양을 찬양하는 시간을 가졌고, 그 후로는 다시 자신들만의 시간을 가지기 시작했다. 기다리는 자는 그런 어린 양의 모습을 보며 여전히 하찮고 망할 가여운 어린 양이라고 속으론 생각하고 있지만 자신의 교단을 이렇게 만들고 키웠다는 점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자신이 힘을 주었다곤 해도, 이 교단을 지금까지 만들어 낸 것은 오로지 어린 양의 힘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니까.

 

아무튼 그들이 그런 생각들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이, 어느새 태양이 내려앉고 달이 고개를 들어 밤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휴가를 즐기고 있던 추종자들도 너무 즐겁게 휴가를 즐기고 있는지 밤이 되자마자 자신들의 거주지로 가서 잠에 빠져들기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달 목걸이 때문인지, 아니면 생각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잠에 들지 않고 있는 기다리는 자.

그리고 그런 기다리는 자에게 다가가선 자연스럽게 옆에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는 어린 양. 그렇게 옆에 어린 양이 앉아있는데도 웬 일인지 기다리는 자는 불평불만 없이 어린 양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태양과 달을 보고 있으면, 나의 옆을 항상 지키고 있던 두 존재가 생각나는군. 마치 지금도 나의 곁에서 나를 보호하고 있는 것처럼."

 

 

물론 지금은 그 둘 대신 망할 양이 대신 있지만. 이라고 조용히 중얼거리다가 다시 말을 이어나가는 기다리는 자.

 

 

"나는 예전부터 태양과 달을 생명과 죽음에 비유하곤 했지. 어린 양, 너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지 않나? 뭐, 없다고 해도 상관없는 일이지만."

 

 

생명과 죽음이라는 말에 나름 공감이 되긴 하는 듯 옆에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리는 어린 양과 그런 모습에 "의외군." 이라며 간단하게 반응하다가 다시 자신의 생각을 꺼내놓기 시작하는 기다리는 자.

 

 

"태양은 새로운 하루의 시작을 의미하곤 한다. 태양이 뜨면 모든 생명체들은 다시 일을 시작하니까. 그런 것들이 마치 새롭게 태어나는 생명과도 같은 모습같았지. 그리고 나의 곁에서 나를 지키던 그 태양도 그렇게 내가 늘 새로운 일을 생각할 수 있도록 곁에 있어주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어린 양은 자신이 추종자들에게 일을 시키는 것처럼 그들에게 일을 시킨 적이 있냐고 묻는 듯한 모습이었고, 그는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나의 곁에 있는 것이 곧 그들이 하는 일이다." 라며 짧은 대답을 건넸다. 그들과 함께 전투를 벌였던 것도, 그들이 처음부터 기다리는 자의 곁을 지키는 것을 맡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태양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냈다면 자연스럽게 달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는 법. 기다리는 자는 하늘에 떠 있는 달을 잠깐 바라보더니 곧 새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태양이 고개를 숙이면, 달이 고개를 들어 세상을 은은하게 비춘다. 태양이 비추는 빛과는 다른 느낌이지만, 그렇다고 달이 비추는 빛이 쓸모가 없는 건 전혀 아니지."

 

 

은은하게 비치고 있는 달빛을 받는 그의 모습은, 마치 그가 진정한 신의 힘을 가지고 있었을 때의 근엄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듯 했다.

 

 

"이런 은은함을 보고 있으면, 마치 생명 사이에서 조금씩 고개를 드는 죽음과도 같다고 느끼곤 했다. 실제로 죽음이라는 건 언제 갑자기 찾아올 지 모르는, 어디에서 고개를 들어 바라보고 있을지 모르는 것이니까. ...뭐, 지금의 나,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이 가련한 어린 양에겐 포함되지 않는 이야기겠지만 대충 공감은 할 수 있겠지."

 

 

어린 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포함되지 않더라도, 자신의 교단을 함께 이끌어주는 추종자들이 그렇게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를 많이 목격했으니까. 실제로 그의 말처럼, 죽음은 언제 어디서 갑자기 찾아올 지 모르는 것이었다. 그 누구도 그 추종자가 갑자기 그렇게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뭐, 어린 양이 강제로 죽음을 맞이하게 한 경우도 없지는 않겠지만.

 

 

"나의 곁에서 나를 지키던 달도, 그렇게 언제 어디서 갑자기 스러질 지 모르는 자신의 생명을 감수하고서라도 나를 지켰다. 그리고 지금은... 그렇게 되었군. 솔직히 그들도 같이 함께할 수 있다면 좋았을 테지만 그들에겐 나와 네 녀석의 힘의 영역이 닿지 않았나보군. 안타까운 일이다."

 

 

자신이 이렇게 추종자들을 이끌고 있는 것처럼, 이 곳에서도 자신만의 추종자를 이끌며 함께하는 건 반칙 아니냐는 어린 양의 말에 그는 살짝 발끈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다가 곧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저었다.

 

 

"그, 그런 게 아니다! 그냥 이 곳에서 저 추종자 녀석들이 서로 친구를 맺고 그러는 것처럼, 나도 동료가 있으면 좋은 것 아니겠느냐? 물론 그 '동료'와 무엇을 할 지는... 뭐, 장담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그런 건 걱정하지 말라면서, 조금이라도 반목하려는 조짐이 보인다면 번제를 하든 무엇을 하든 그런 식으로 처리했을 것이라고 능청스럽게 말하는 어린 양을 보면서 머리에 손을 짚는 기다리는 자. 한편으론 그런 대답을 생각했을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놀라지도 않는다. 이 어린 양의 교단에서는 이 교단의 교리를 따라야 되는 법이니까, 여긴 기다리는 자 자신의 교단이 아니니까.

 

 

"뭐... 지금의 나를 포함해서 모든 것들을 다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건 어린 양 네 녀석일 테니, 딱히 이상한 것도 아니겠군. 그리고 지금 네 녀석의 눈에 보이는 나는 어떤 모습일지도 어렴풋이 짐작이 되고 말이다."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도 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답하는 어린 양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 뭐, 그 '특별한 이유'에 대해서 생각하려고 하는 것 같지만... 그렇게 생각하려고 하는 사이에 다시 밤은 지나가고 낮이 밝아버렸지만 말이다. 성일의 의식도 곧 끝나가니, 다시 일을 시작할 시간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린 양은 이제 준비해야겠다는 말과 함께, 옆에서 일어나곤 기다리는 자에게도 준비하라는 뉘앙스로 어깨를 살짝 으쓱거렸다. 물론 기다리는 자도 태양을 바라보며 마치 받아들이듯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이 곳에서는, 왠지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기 싫은 것 같기도 하군..."

 

 

그렇게 조용히 중얼거리며, 어쨌거나 새로운 하루는 다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