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들은 저희들만의 주인님을 섬기고 있고, 그런 주인님의 힘을 이어받은 교주님의 교단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기에 급급한 필멸자입니다.
하지만, 그대들도 알고 계시다시피 지금의 주인님은 힘을 잃은 추종자 신세가 되었고, 그렇기에 외부와 관련된 도움을 더 이상 줄 수 없는 주인님께서는 저희들에게 교단에 부족한 자원을 부탁하거나, 잠시 외부에서 교단의 평화를 방해하는 이교도를 없애버린다던지와 같은 단순한 일을 내려주었죠.
...그런 단순한 일들을 하며 살아오던 중, 이번의 일은 저희들에게 새로운, 정확히는... 오래 전 잠들어있던 어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기분을 다시금 떠올리게 해 주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 저는 주인님의 선택을 받고 교단의 사무적인 일들을 해결하거나, 필요로 하면 외부로 나가 자원을 챙겨오거나 이교도를 제거하는 등 지금과 다르지 않은 일들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과는 다른 아주 큰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직접 주인님께서 저를 지도해주며 앞으로의 나아갈 길들을 안내해 주었다는 점이죠.
그렇게 주인님의 선택, 지도, 은총을 받으며 살아오던 저에게, 어느 날 주인님은 조용히 저를 비밀스러운 공간에 부르셨습니다.
"크로셀이여."
"네, 주인님. 오늘은 무슨 일로 저를 부르셨습니까?"
"너는, 언제나 나를 섬기며 나의 힘을 정당하게 사용할 것이라고 맹세할 수 있는가?"
"...물론입니다. 그 마음은, 언제나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의 대답을 들은 주인님은, 곧 주인님의 붉은 왕관을 빛내셨고, 그 강렬한 빛에 저는 순간 손으로 눈을 가릴 수밖에 없었죠. 손으로 스며들어오는 붉은 빛이 어느정도 사그라 들었을 때, 손을 거두고 눈을 뜨자 제 눈 앞에 있었던 것은... 주인님의 손 위에 올려져 있었던 거대한 낫이었습니다.
주인님께서는 그 거대한 낫이 올려져 있던 손을 저에게 내리곤, 제가 그 낫을 받아들이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이 무기는, 나의 힘으로- 그리고, 나를 향한 너의 믿음과 신뢰로 만들어진... 또다른 나의 권능이다."
"...주인님의 이 또다른 권능을, 제가 받아도 되는 겁니까...?"
"오래 전부터, 너는 나의 권능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왔고, 그 날이 오늘이 된 것일 뿐이니, 이 것을 받고 앞으로도 나를 향한 믿음을 더 드러내어라."
"앞으로도, 영원히... 저는 주인님을 믿고 찬양하겠습니다."
주인님의 권능으로 만들어진 낫을 처음 들었을 때의 기분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죽음을 실체화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싶을 정도로 차가우면서도, 한편으론 어디서든 주인님이 저를 지켜보고 있는 것마냥 주인님의 기운이 느껴지는... 그런 기분이었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이 낫에서는 그 기운이 한결같이 느껴졌습니다. 비록 지금은 힘을 다 잃어버린 주인님일지라도, 이 낫만큼은... 여전히 권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늘 언제나 날카롭고 붉게 빛나고 있었죠.
...네, 맞습니다.
이 낫은, 주인님의 권능이자...
주인님이 모든 걸 빼앗긴 지금은... 유일하게 남아있는 주인님의 권능인 셈이죠.
물론 저는 이 낫에 담겨있는 권능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저 이 낫을 휘두르는 것만이, 제가 이 권능을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뿐이죠.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주인님의 권능을 발휘할 수 있다면... 저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렇기에... 이교도를 제거하며 그 이교도들의 영혼을 죽음으로 인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죠.
그렇게 늘 이교도만을 베어가던 와중... 이번 일은, 저에게도... 그리고 이 낫에게도... 새로운 경험이 되었을 겁니다.
...
... ...
신의 피가 닿은 자.
저는 그 존재에 대해서 지금까지 아무것도 들었던 적이 없습니다. 주인님께서도 신의 피에 대해서만 어느정도 알려주셨을 뿐, 그 이상으로는 알려주신 게 없었죠. 신의 피가 도대체 어떻게 생긴 것인지, 그것에 닿으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알게 되었죠.
그 때 겪었던 일을 통해서, 그리고...
군주님을 통해서.
...이 낫으로, 무언가를 다시 베어버릴 수 있는 날이 왔다는 점이,
이 권능을, 다시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날이 왔다는 점이,
저에게는... 크나큰 행복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의 제안을 받아주신 군주님에게,
정식으로 다시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백색의 개척자, 파멸의 관장자이신 군주님과,
그 군주님을 따르는 첫 번째 사도의 뒤를 잇는...
또다른 사도이자,
용병.
저, '죽음을 섬기는 자' 크로셀은...
지금 이 자리에서 만큼은 '개척과 파멸을 함께하는 자' 크로셀이 될 것임을,
이 낫에 두고 맹세합니다.
'CotL' 카테고리의 다른 글
[크로셀 > 에코] 230609 (0) | 2023.06.09 |
---|---|
[단탈리온 > 시루 & 얀] 230601 (0) | 2023.06.01 |
[Cult of the Lamb / 크로셀 & 스틱스] 230515 (0) | 2023.05.15 |
[크로셀] 230513 (0) | 2023.05.13 |
[Cult of the Lamb / 크로셀 & 알메르] 230507 (0) | 2023.0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