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멸자의 생명은 늘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필멸자'니까요. 하지만 알 수 없는 힘으로 만들어진 목걸이 중에서는 이 생명을 늘어나게 하거나, 아예 영원히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목걸이가 존재했고, 그 목걸이를 이용해서 교주님은 특별한 추종자를 불러 오랫동안 살아갈 수 있게(또는 영원히 살아갈 수 있게) 목걸이를 하사하는 일이 많았죠. 사실 저도 그 목걸이를 받을 예정이었던 추종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만, 이런저런 사정을 말하며 거절을 했더니 교주님께서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인정해 주셨습니다.
일단 먼저 말씀드리자면... 교주님에게 악감정이 있다거나 그런 것이 아닌, 오로지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교주님을 설득한 것이니 오해는 없었으면 합니다. 저도 영원히 살아가고 싶은 건 다른 필멸자들과 별 다를 바 없는 존재이지만, 그래도... 죽음이라는 걸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곤 했었습니다. 다른 곳이었다면 '무슨 이상한 녀석이 다 있어?' 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이 곳에서는 교주님의 의식을 전부 지켜본 입장으로서...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는 일이었으니까요.
죽음의 힘을 이어받은 교주님은, 누군가를 다시 되살리는 부활 정도도 가볍게 이루어내실 수 있는 분이었으니.
그래서 저는, 영원히 살아가는 것보다... 중간중간 죽음을 경험하면서 다시 부활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물론 죽음을 겪는 과정이 늘 평온하지만은 않고 가끔은 이교도에 의해서 큰 상처를 입어 죽는다던지, 병에 의해 죽는다던지... 그런 일들도 많았지만 어쨌거나 다시 살아나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었으니... 뭐, 이런 것들을 겪은 덕분에 최대한 평온하게 죽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을 교주님께 말씀드리니 교주님께서도 사실 처음엔 저를 보며 특이하다고 말씀을 하긴 하셨지만은... 그래도 교주님 입장에서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흔쾌히 인정해주셨죠. 이 모습을 본 제 주인님이 "...과거나 지금이나, 너는 언제나 특이한 선택을 하는구나, 크로셀이여." 라고 한 마디를 하셨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그만큼 호기심 하나만큼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커졌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겠죠.
이번 이야기는, 그렇게 반복되는 죽음을 겪다가 생긴 이야기입니다.
최근, 저는 어떤 새로운 분을 만났습니다. 자신을 '거두는 자' 라고 소개하며, 머지않아 이 세상을 떠나는 영혼들을 죽은 자들의 세계로 인도하는 존재라고 하셨죠. 이렇게 말하니 서로 소통이 잘 되는 것 같지만... 사실 그 '거두는 자'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바닥에 글자를 써서 소통을 하거나, 수화를 이용해서 소통을 해야 했죠.
그래서 최근에 수화와 관련된 책들을 찾아서 혼자 독학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처음엔 '교주님의 교단에 이런 책이 있을까?' 라는 기묘한 의심을 가지고 교주님에게 허락을 받은 뒤 책이 보관된 곳을 이리저리 뒤적거렸습니다만... 의외로 책이 있긴 하더군요? 비록 많은 내용이 담겨있는 건 아닌 간단한 것들 위주로 적혀있는 일종의 초급, 기초를 배우는 책이었긴 하지만, 일단 그런 것들이라도 알아두면 충분히 써먹을 수 있는 일이니까요. 다행히 이후로는 좀 더 고급에 가까운 어휘를 구사할 수 있는 책을 구할 수 있게 되어 그것까지 전부 공부하고 있는 편입니다.
...공부라고 하니 제가 이렇게 수화를 공부하고 있는 걸 보고 지나가던 리온이 생각나는군요. "헤에~ 보기만 해도 어지러워~" 라고 한 마디 꺼내곤 성전으로 나가는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뭐, 원래 리온은 공부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으니 당연한 반응이긴 하겠지만요.
다시 그 '거두는 자'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와서, 사실 그 분의 목소리를 아예 들을 수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조금 특수한 조건을 거쳐야만 했죠. 그 특수한 조건이란 바로...
죽음의 문턱에 다가서는 것이나, 직접 죽음을 맞이하는 것.
사실 이전부터 목소리에 대한 의견은 어느정도 갈리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께서는 교주님의 교단에 있는 추종자들의 영혼도 데려가는 분들이었기 때문에, 우연히 그 분들 중에서 누군가가 부활하게 되면 어떤 특이한 존재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하는 그런 소문을 내곤 했거든요. 물론 그 '거두는 자'를 본 존재도 별로 없거니와, 직접 목격하기란 더욱 쉽지 않으니... 죽었다가 깨어났더니 이상해졌다며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곤 바로 호기심이 생겼지만요. (제가 이상한건지...)
그렇게 저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음을 느끼게 되고, 조금씩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과정에서 그제서야 약간의 문제점이라면 문제점인 부분을 발견했습니다. 그건 바로... 다른 분들이라면 모르겠지만 저는 죽음을 맞이하자마자 바로 부활하는 식으로 새로운 목숨을 얻기 때문에... 그 '거두는 자'를 오랫동안 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그 분이 손을 내밀자마자 저는 붉은 왕관의 힘으로 교단에서 다시 눈을 뜨게 되겠죠.
...하지만 이번에는, 우연히도 이전에 교주님께서 소중히 여기시던 추종자가 죽었던지라 부활식에 조금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며 저에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기다리고 있었다."
"..."
처음으로 들어본 '거두는 자'의 목소리는... 아무래도 신기했습니다. 그동안 입으로는 서로 아무런 말도 나눠보지 못한 채 바닥에 글을 쓰는 것이나 수화로만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렇게 입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그 자체가 말이죠.
"드디어 목소리를 들어보게 되네요."
...물론 그 소리가 '거두는 자'에게는 조금 뜬금없이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딱히 별로 신경쓰진 않는지 그저 저를 바라보고 있다가 조금씩 부드럽게 손을 내미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일단 저는 이 곳에서는 죽은 목숨이니까, 저를 죽은 자들의 세계로 인도하려는 것이겠죠.
"모든 이들은 죽음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네겐 남겨주마.
이 세상에 대한 것을..."
"...영광입니다."
죽은 자들의 세계.
저에게는 그저 이야기로만 들어온 장소였습니다.
주인님을 섬기고 있는 존재가 죽은 자들의 세계에 대해서 모른다고 하면 주변에서는 꼭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이 꽤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당연하다는 듯 그동안의 일을 설명하면서 죽은 자들의 세계를 간 적이 없다는 걸 설명하곤 했죠. 일단 여기서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저는 주인님이 죽은 자들의 세계에 있는 동안엔 주인님을 찾아 현세를 떠돌고 있었으니... 그렇게 엇갈려버린 셈이니까요.
그렇게 죽은 자들의 세계를 감상하던 중 자연스럽게 본능적으로 이 곳에 대한 분위기를 표현해버리곤 했습니다.
"이 곳에 대해서는... 이야기로만 들어왔습니다. 주인님을 통해서라던지, 주인님을 수호했던 수호자 분들을 통해서라던지... 실제로 와 보니... 더 놀랍네요..."
"이제는 다들 현세로 가버렸지만 말이다."
간단히 제 이야기에 대답해주며 조용히 걸어가는 '거두는 자'님. 그러면서도 잠깐 고개를 돌려 저를 바라보더니 약간은 뜬금없는 질문을 하곤 했습니다.
"...죽은 소감은 어떤가."
"소감...이요? 음..."
솔직히 누군가가 이렇게 소감을 물어본 적이 없었으니... 조금 얼굴을 긁적거리며 어떤 대답을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그냥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줄줄 늘여놓기로 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여전히 참 낯선 기분입니다. 죽음을 계속해서 겪는다는 것도, 죽은 뒤에 계속해서 살아나는 것도... 물론 죽음을 계속 겪는 건 영생을 선택해도 됨에도 불구하고 굳이 저의 선택으로 일어난 일이긴 합니다만은..."
"솔직하군."
"제가 거짓말을 못 하는 편이라."
제 소감을 들은 뒤의 짧은 감상평을 남긴 '거두는 자'님은 어느새 눈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저를 바라보며 다른 이야기들을 꺼냈습니다.
"이 곳이 나의 거처다."
"...거처라기엔, 허전한데요?"
"따로 정해진 장소가 없으니."
"사실상 어디든 다 거처인 셈이군요..."
이렇게 죽은 자들의 세계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다가, 현세에서 자신을 맞이하는 영혼이 생길 때 조용히 내려가서 영혼을 거두어 다시 이 곳으로 온다고 생각하면... 왠지 조금은 허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듣자마자 또 바로 무언가가 떠오른 것이 있어서... 약간은 조심스럽게 '거두는 자'에게 제안을 하듯 말을 꺼냈습니다.
"고요하고 적막하네요. ...다음에는 이번처럼 부활식을 조금 늦게 해 달라고 해야겠어요."
"...어째서지?"
"그래야... 당신의 친구가 될 수 있으니까요."
친구라는 말에 귀를 쫑긋거리면서도 시선이 미묘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니 이런 반응을 듣는 게 흔치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어쩌면 당연할 것 같기는 하지만요...
"나에게 그렇게 대해주지 않아도 괜찮다."
"그런가요."
사실 어떤 느낌인지는 어느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보통 일반적인 필멸자들이라면 죽음을 '무서워하며 피하려고' 하는 성향 때문에 자신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쌓여서 누군가와 거리를 두는 것이 일상이 되었겠죠. 하지만 저는 일반적인 필멸자들과는 다르게 죽음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려고' 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으니... 그만큼 새로운 것을 깨닫게 해 주려는 마음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여전히 그 마음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대하고 싶습니다."
"...그래."
말이 끝나자마자 잠깐 의자에 앉아서 잠드는 듯한 '거두는 자'님. 하지만 바로 눈을 뜨시는 게 보이는군요. 시간은... 한 1분 정도 지났나...? 1분으로 피곤함이 해결이 되는걸까, 싶은 의문이 들긴 하는데... 그것과는 별개로 '거두는 자'께서는 갑자기 저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이 분도 꽤나 큰 편이었다는 걸 새삼 느끼곤 합니다. 거의 주교들이나 과거의 주인님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저의 1.5배는 되어보였으니 큰 건 맞죠.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 왠지 이 분이 저의 또다른 주인님인 것만 같았습니다.
"이렇게 쓰다듬어주는 건 주인님 이외엔 없었는데... 하지만 당신은 주인님을 통해 만들어진 존재이니... 사실상 이 곳에선 당신이 저의 주인님이네요."
...그러고보니 이 얘기를 했던가요? 이 '거두는 자'의 탄생에 대해서.
아주 오래 전, 주인님께서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 낸... 그런 존재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걸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거두는 자'임과 동시에 '만들어진 존재'인 셈이죠. 어떻게 이런 존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인지... 과거의 주인님은 여러모로 굉장한 힘을 가지고 계셨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더 길게 풀어보도록 하고, 지금은 다시 죽은 자들의 세계의 이야기로 넘어와서 제 말을 들은 '거두는 자'는 잠깐 얼굴을 긁적거리면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너도 그분을 주인이라고 부르는군."
"근본적으로 저희는... 같은 주인을 섬기는 거니까요. 하지만 그 안에서도, 저는 당신을 또다른 주인님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유에 대해서 말하자면 '거두는 자'는 주인의 힘으로 만들어진 존재니, 사실상 또다른 주인이라고 해도 이상할 건 없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주인님의 힘을 다룰 수 있다면, 주인님의 힘으로 만들어진 몸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게 아닐까요? 물론 저의 이야기를 모든 존재가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었고, 그건 '거두는 자'에게도 똑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어렵군."
"하하... 저도 바로 확답이 나올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을 통해서 태어난, 결국은 자신도 추종자에 해당되는 존재가 다른 존재에게서... '주인'이라는, 높게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 혼란스럽겠죠."
제 이야기를 들으며 계속해서 생각에 잠겨있다가, 마치 무언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생긴 듯 저를 보면서 말을 꺼냈습니다.
"나는 내게 주어진 일 이외에는 아는 게 없다. 알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혼란스럽군."
아무래도 그렇겠죠. 제가 무언가 새로운 지식을 주입시킨 것 같은 상황이나 다름없긴 하니까요.
"제가 혼란을 드린 걸까요. 그렇다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그렇지만 이제 조금씩 알아가고 싶다면, ...언제든 도와드리죠."
그 말을 들은 '거두는 자'님은 갑자기 저를 번쩍 들어올리면서 마치 저를 살펴보듯 눈을 마주쳤습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눈을 마주치고 있으니... 확실히 주인님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여러모로 신기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고 있던 중, 지금이 제일 '그 말'을 꺼내기 좋은 타이밍일 것 같다는 생각에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아, 그러고보니... 제 소개를 했던가요? 아니면 이미 다 알고 계실까요... 흠... 일단, 저는 '크로셀'이라고 합니다."
"...크로셀."
마치 제 이름을 기억하기라도 하듯 조용한 목소리로 읊고 있다가 다시 저를 바라보며 소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스틱스, 만들어진 존재. 거두는 자."
"뒤의 이야기들은 많이 들어봤지만, 앞의 이름까지 붙어서 완전하게 들으니 더 색다르네요. 아무튼... 스틱스, 좋은 이름이네요. 잘 어울리기도 하고요."
이런저런 책들을 읽어보면서 다양한 정보들이나 유래에 대해서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보니... '스틱스'라는 이름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유래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스틱스님과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표현하게 된 것이기도 하고요. 물론 스틱스님은 제 이야기에 살짝 의문을 가지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요.
"그런가."
"스틱스님이 맡은 '거두는 자'라는 역할에 잘 맞는, 완벽한 이름이니까요."
"...모르겠군."
"괜찮습니다. 천천히 알아가면 되는 것이니까요."
이제 '거두는 자'라고 부르지 않고, 당당하게 스틱스님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큰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직까진 부활식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니... 이 곳에서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군요.
스틱스님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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