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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black crow

정말 쓸데없이 날씨가 좋은 어느 날, 길을 걷다가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와서는 내 어깨에 살포시 자리를 잡았다. 뭐야…? 싫지는 않았지만, 갑자기 내 어깨에 자리를 잡으니 기분이 묘해졌다. 가끔 주변에서 까마귀를 한 마리 키우면 괜찮을 것 같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는데, 어쩌면 그걸 노리고 나에게 자리를 잡은 것일지도 모르지. 그리고 그저 까마귀 한 마리인데 딱히 거부감을 가지는 녀석도 없을 것이다.


집에 오자, 역시나 까마귀를 보고 오히려 신기해하기만 했다. 물론 그런 녀석들 사이에서 하나는 굉장히 겁먹고 숨어버리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나에게 말을 걸어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까마귀 때문에 다시 숨어버린다는 게 함정이지만.


"까마귀는 어디서 얻어온거야?"

"그냥 어깨에 앉아서, 데려왔다."

"오- 운이 좋네! 역시 까마귀가 잘 어울린다니까!"

"그런가. 뭐, 적어도 허전하진 않겠군."

"그런데 까마귀 잘 키울 자신은 있어?"

"어떻게든 키우면 되겠지. 내 까마귀니까 너무 걱정하진 마라."


까마귀에 호기심을 보이는 녀석들이 전부 사라지고, 계속 까마귀 때문에 숨어있다가 나오다가를 반복하던 녀석이 이제서야 용기를 내서 나에게 다가왔다. 물론 여전히 까마귀를 볼 때마다 동공이 흔들리는데, 이 모습을 보고 있으니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히, 히익… 그거 뭐야…!?"

"아, 이거? 오는 길에 한 마리 얻어왔다."

"왜 그렇게 무서운 걸 얻어오는거야!?"

"무섭나? 귀엽기만 한데."

"전혀 안 귀여운데… 어딜 봐서 귀엽다는거야…."

"이보다 더 귀여운 녀석 본 적 있냐."

"얼마나 많은데! 단지 본인이 못 봐서 그런 거겠지…."


흐음, 까마귀는 오히려 나에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녀석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건가. 어쨌든 내가 까마귀를 어깨에 올리고 다닐 때마다 녀석은 내 주변을 피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까마귀가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겠지만. 


까마귀에게 밥을 주려고 하면 다른 녀석들이 와서는 자기가 밥 줘보고 싶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고, 까마귀가 이곳저곳 날아다니면 자신들도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까마귀를 쫓아다녔다. 나는 그냥 그런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고, 까마귀에 겁먹는 녀석은 그럴 때마다 구석에 숨어서 까마귀가 얼른 없어지기만을 기다리는 듯 보였다. 이제 슬슬 적응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잠시 다른 녀석들이 까마귀를 산책시켜줄 겸 까마귀를 데리고 밖으로 나간 사이, 구석에 숨어있다가 꽤 진지한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뭐- 무슨 이야기를 할 지는 안 봐도 뻔하지.


"그 까마귀 좀… 치워줘…"

"얻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치우라니."

"하지만 볼 때마다 무섭단 말이야…."

"그럼 이참에 까마귀랑 친해지면 되겠네."

"ㅁ…뭐!? 그게 나한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

"안 될 게 뭐가 있나. 할 수도 있지."

"나에겐 무리야!"


시도하지도 않고 바로 포기라니, 역시 마음이 약한 녀석이라서 저럴 때 참 피곤한 녀석이다. 한편으론 놀려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재밌어 보이기도 하지만, 뭐… 그랬다간 오히려 이 녀석의 겁만 더 늘어날 것 같아서 아무래도 하지 않는 게 더 나을 것 같긴 했다.


"까마귀는 내가 알아서 잘 키울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

"…정말 나한테 아무런 피해도 안 가게 해 줄거지?"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뭐…."


까마귀 하나 키우는 것도 이렇게 피곤해서야,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