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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로로/자캐

[자캐 - 샤른호르스트 / 엘레멘트] Conflict From Dark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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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보이는 한 줄기 빛이라는 말이 있잖아..."

"갑자기 그 말은 무슨 이유로 꺼내시는 것입니까."

"정말로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보인다면, 다들 희망을 가질까?"

"어차피 빛이 보인다고 해도 결국 다 소용없는 일입니다."

"...그런가."

"빛이 보인다고 해서, 갑자기 해결법이 막 떠오르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생각해 보니, 틀린 말은 아니구나..."


샤른의 말이 옳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한 줄기 빛이 보인다고 계속 빛이 보일 거라는 확신도 전혀 없을 것이고, 그 빛으로 인해 희망을 가졌다가 다시 그 빛이 사라진다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정말로, 한 번 어둠 속으로 빠지면 다시는 헤어나올 수 없는 칠흑의 어둠 속에서 허우적거려야 되는 것일까...


그나마 다행이라는 점은, 난 지금까지 그런 어둠 속으로 빠져본 적이 없었다. 빠지려고 해도 정말 그 어둠 속으로 완전히 빨려들기 전에 빛 속으로 빠져나왔기에... 

만약 내가 그런 어둠 속에 완전히 빨려들어간 상태에서 샤른을 만났다면, 샤른의 모든 말과 행동에 납득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나저나 언제 봐도 샤른의 큰 덩치는 다른 존재들에게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만약 누군가가 샤른에게 잘못을 저지른다면 아마 말대꾸나 반항같은 것도 하지 않고 바로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지 않을까. 

물론 샤른은 그런 녀석들을 절대로 그냥 봐주지 않을 것이 뻔할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널 그냥 치고 가면, 어떻게 할 거야...?"

"엘레멘트 씨가 상상하는 그대로입니다."

"...아..."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는 질문 아니겠습니까? 제가 그럴 때 어떤 행동을 하는지 이미 다 알고 계시는 분께서 말입니다."

"...그렇네..."

"뭐, 다른 대답을 바라고 던진 질문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제 생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뭐랄까, 내가 굉장히 멍청해지는 기분이 드는 것 같았달까. 사실 샤른이 한 말 그대로 어떤 대답이 나올지 대충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샤른은 그 생각을 이미 읽고 있었다는 듯 내가 상상하는 그대로라며 답을 내놓았다. 


샤른에겐 그 어떤 자비도 바랄 수 없는 존재이니까, 당연히 누가 무엇을 하든 그 행동이 자신의 기분에 맞지 않는 행동이라면 그에 대한 댓가를 처절하게 치뤄주는 녀석이니까... 

그 행동이 남들이 생각하기엔 별 신경 안 쓰는 행동일지라도 샤른에게 했을 땐 어떻게 될 지 모르는 법이다.


서로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고 걷는 건 너무 분위기가 묘해서 최대한 쓸데없는 이야기라도 꺼내려고 온갖 생각을 굴려보지만, 아무래도 정말 이젠 할 얘기가 없는건가- 싶을 정도로 떠오르는 게 없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며 끼긱- 웃는 샤른의 웃음소리도 들렸는데, 늘 그렇듯 평범하게 웃는다기보단 마치 재밌다는 듯 웃는 느낌이 더 강했다. 내가 고민하는 모습이 대놓고 보였던 걸까...


그렇게 계속해서 샤른이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을 때, 슬쩍 눈만 굴려서 앞을 바라보았는데 어떤 정체모를 녀석들이 이 쪽을 향해 무작정 달려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왠지 이대로 계속 걷기만 하다간 충돌해서 뒷일이 귀찮아질 것 같은데... 아직까지 샤른은 눈치를 못 챈 듯한 모양이다. 이걸 어쩌지...


어차피 어떤 상황이든 뒷감당하기 힘들 것 같으니까, 정체모를 녀석들이 눈앞까지 도달하기 직전에 샤른을 최대한 본인 쪽으로 잡아당겨 녀석들과 충돌하지 않게 만든다. 

다행히 녀석들은 지나갔고, 샤른도 아슬하게 그 녀석들을 피하는 데 성공했다. 나는 샤른을 최대한 강하게 잡아당기려고 한 탓인지 샤른을 끌어당긴 후 제대로 균형을 잡지 못하고 넘어졌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며 이번에도 끼긱- 웃으며 괜한 행동을 한 게 아니냐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왜 쓸데없이 넘어져서 이런 창피함을 얻게 되는 걸까...


"끼긱-. 저를 끌어 당기시다니."

"...사실, 그 녀석들이 우리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거, 알고 있었지...?"

"몰랐습니다만."

"...아닌 것 같은데...?"

"만약 그 존재들이 저를 피하지 않고 계속 돌진했다면, 아마 그 존재들만 더 큰 피해를 보았을 겁니다."

"뭐... 그건 그렇겠지만..."

"그렇다고 엘레멘트 씨가 쓸데없는 행동을 한 것 같진 않지만, 사실 저에겐 굳이 하지 않아도 될 행동이긴 했습니다."

"그래도... 내 본능이... 끌어당기라고 해서..."

"본능이라. 여전히 엘레멘트 씨의 본능은 선한 영역에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악해져봤자... 이런 본능은 어쩔 수 없겠지."


샤른을 끌어당기지 않으려고 마음먹어도 결국은 본능에 의해 끌어당기려고 했을 것이다. 

나는 아직까지 선한 영역에 있으니까, 아무리 무시하려고 해도 결국은 선한 본능에 내 몸을 맡길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과연 내가 사악해질 수 있을까."

"사악해진다는 건, 본인이 사악해지고 싶다고 생각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무슨 뜻이야...?"

"자신이 생각하지 않는데도 몸이 자동적으로 악한 행동을 하게 되고, 그런 행동이 익숙해지게 되면 그것이 사악해지는 것입니다."

"그런건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사악해지고 싶은 모양입니다?"

"사실 그런 생각은... 해 본 적 없지만..."


내가 사악해져봤자 얼마나 사악해지겠어... 결국 남들이 보기엔 쓸데없이 나쁜 척 하는 그런 녀석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정말 선한 것에 대해서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아야 되고, 악한 것에 익숙해져야 그 때부터 진정으로 사악하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터. 

하지만 나에겐 그런 건 확실히 불가능하다고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선한 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렇다고 악한 것도 아닌... 언제든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질 수 있는 게 지금의 내 모습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