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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젝트 헤드

[자캐 - 키네로메] 180909







"뭐? 지금 말 다 했냐? 내가 못 때릴 것 같아!?"

"…키네틱."

"계속 그렇게 건드려 봐! 그래, 누가 먼저 피투성이가 되고 먼저 죽나 한 번 끝장이라도 보자!"

"자네…"

"그딴 식으로 함부로 말 꺼내지 마. 분명 나는 경고했어."

"…"



……………



"형… 이번 일은, 그게…"

"…일단 이리 오게나."



…많이 실망했으려나.


아니, 정말… 내가 먼저 시비를 건 게 아니었다니까. 갑자기 저 쪽에서 먼저 시비를 걸어가지고, 순간적으로 막 이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어떤 그런 말로 설명하기 힘든 게 솟아올라서… 터져버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가끔 이렇게 머리 끝까지 치솟는 느낌에 언성을 높히고 말을 조금 험하게 하는 경향이 있었다. 아무래도 전투병기 시절의 잔재…라고 말할 수 있겠지. 그 당시에는 이렇게 행동해도 크게 말리는 사람도 없었고, 지적하는 사람도 없었으니까 말이지.


아무래도 계속해서 남아있는 이 잔재를 없애야 된다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이런 게 쉽게 사라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이번에 정말 대단한 일 하나 만들었구만… 젠장.



"…기분 많이 안 좋아?"

"…"



…말이 없네. 말없이 그저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조금 무섭다는 느낌도 들고, 두렵다는 느낌도 들었다. 마치 나에게 어떤 행동을 보일지에 대한 그런 공포감…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로메로 형이라면, 심각한 그런 건 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오히려 로메로 형이기에 무슨 행동이 나에게 보여질지 더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주변에 아무도 드나들지 않는 살짝 울창한 느낌의 장소에 왔다. 그래서 그런지, 방금까지만 해도 머리 끝까지 솟아올랐던 화가 가라앉고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로메로는 무릎을 꿇는듯한 자세를 취하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키네틱도 똑같이 따라하게나."

"…나도…?"



처음에는 '내가 무릎을 꿇는 게 가능한가?' 싶다가도 일단은 시도라도 해보자- 싶어서 따라해 보았는데, 예상외로 무릎을 꿇는데에 불편하다거나 방해되는 건 없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로메로의 앞에서 마주보며 무릎을 꿇은 상태로 바라보는 모습이 되었다.



"…녀석들, 의외로 세세한 부분까지 잘 만들어놨구만…"

"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겐가?"

"아, 아냐. 아무것도…"



그렇게 잠시 적막한 시간이 흐르다가, 조용히 로메로가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아마, 내 행동에 대한 지적이겠지. 당연한 상황이니까.



"뭐, 저번부터 계속 말해왔네만- 아마 자네도 잔소리 듣는 게 딱히 좋지만은 않겠지."

"그래도 내 행동의 어디가 잘못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아야 되니까."

"…후후, 그래도 마음가짐은 언제나 그대로군."

"이야기를 듣기만 해서는 고쳐나갈 수 없으니까. 고치겠다는 마음가짐도 필수지."



아마 형도 깨닫고 있을 것 같다. 자신의 지적으로 내가 조금씩 고쳐나가고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아직 부족하고 고쳐야 될 부분이 많지만, 로메로 형의 지적으로 그 고쳐야 될 부분을 깨달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렇게 보니까, 마치 로메로 형은 나를 관리하는 관리자 역할을 맡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식물이 기계를 관리할 수 없다는 그런 법은 없으니까.

언제든, 누구든 상관없이 나와 충분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자가 나를 관리할 필요를 느낀다면 나는 그 관리법을 완전히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나는 기계이니까. 누군가가 다루어주지 않으면, 그대로 부식되어 망가질 테니까.


물론 내 의견도 받아줄 수 있는 존재여야겠지. 위에서 말했듯이 '어느 정도' 라고만 했으니… 너무 욕심이 큰가?



"…그래서, 이번에는 무엇을 절제할 필요가 있을까, 형?"

"누군가가 자네에게 시비를 걸었을 때 물론 화가 날 수도 있다네. 하지만 그렇다고 같이 언성을 높히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겠지."

"맞는 말이지. 가끔 내가 예전 성격이 나와서… 오늘 좀 터진 것 같더라고."

"조금씩 가라앉혀나가면 되는 거라네. 너무 시무룩하게 있지는 말게나."

"내, 내가 언제 시무룩한 모습 보였다고…"



…라고 말은 했어도 아마 미안함으로 가득찬 표정이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그래도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하면, 지금의 자네는 사실상 다른 사람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더군."

"사람인가- 뭐, 기계라고 부르든 사람이라고 부르든 형이라면 어떻게 불러줘도 다 좋지만."

"허허, 사람이라고 불리는 건 아직 익숙하지 않은가?"

"그런데 형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사람이라고 불리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아. 사람처럼 감정을 이해할 수 있고, 감정을 표현할 수 있으니까. 기계라면 불가능할 일일텐데."



기계이지만 기계답지 않은 기계…라고 하면 말이 조금 이상한가. 뭐, 어때. 나쁘지 않잖아? 희귀한 느낌도 들고.

로메로 형은 눈웃음을 짓더니 손을 뻗어 나를 쓰다듬어 주었다.



"계속해서 발전할 수 있을 거라네, 키네틱."



쓰다듬받는 느낌이 좋아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살짝 숙이며 로메로 형의 쓰다듬는 감촉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이렇게 쓰다듬받는 걸 처음에는 부끄럽고 어색했지만, 지금은 칭찬을 듣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특히 로메로 형이 해주는 것이라서 더 좋았고. 아니, 애초에 로메로 형 이외의 존재에게서 쓰다듬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지만.



"…응. 형이 있어준다면, 계속해서 나도 발전할 수 있겠지."

"이 장미가 믿음직스러운가?"

"그럼. 날 받아준 또다른 존재인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나를 받아주었으니, 나는 받아준 존재의 명령이나 의견에 따라야지."



눈을 살짝 뜨며 웃는 모습을 지어 보였다.



"과거의 나에겐 전투와 사냥이 나에게 의미를 가져다 주었다면,

지금의 나에겐 형이 곧 나에게 의미를 가져다 주는 존재이니까."



로메로 형은 나름 흐뭇해하는 표정인 듯했다. 아직 표정을 읽는 건 여전히 힘든 일이구나- 싶기도 했다.



"자네의 의미가 바뀌고 있다니, 그건 몰랐구려. 그래도 그것도 좋은 일이니 다행이네."

"겉으로는 보이지 않을지라도, 어디선가 바뀌고 있는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



한번 더 눈을 감으며 다시 고개를 숙인 채 조금은 비장한 듯한 느낌이 드는 말투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언제든 나의 잘못된 부분에 대한 오류를 고쳐줘도 좋아. 언제든 그 명령을 따를 테니까. 나의 소중한 장미 신사이자 형… 그리고, 마스터."

"…허허, 마스터라…"

"지금의 나를 다루고 관리할 수 있는 건 형이 유일하니까. 그러니 마스터라고 불러도 크게 이상할 것 없겠지."

"편한대로 부르게나."



뭐, 늘 그렇듯 장미 신사나 형이라고 부르겠지만- 이미 나의 마음 속에서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마스터나 다름없는 로메로 형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