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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젝트 헤드

[자캐 - 키네로메] Re:set -각인-







"아직도 날 좋아하고 있소?"

"이 푸른 기계는 좋아한다는 감정을 영원히 잊지 않고 살아가니까. 그 감정을 처음으로 깨닫게 해 준 게 형인데 어떻게 잊겠어?"

"처음엔 이상한 로봇인가 했는데... 그 때의 느낌과 지금의 느낌이 확실히 다른것 같소. 지금은 뭔가... 그대와 같은 마음인것 같구려."

"가끔 막 사귀는 거 빼고 다 하는 사이라고 농담삼아 그러긴 했었는데, 기억하려나? ...이젠 그냥 사귀어도 되지 않을까? 나는 여전히 같은 마음인데."

"...후흐흐, 난 그저 그대를 어리게만 봤었는데 그게 아니였나보오. 키네틱, 그대가 내게 잘해주는 것만큼 내가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이제 여행친구로써가 아닌 연인으로서 여행을 다니게 됐구려."

"괜찮아, 그저 이렇게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많은 걸 가르쳐주고 있으니까. 그리고 이제 형은 나에게 사랑이라는 감정도 가르쳐 주었으니, 그걸 내 몸에 새기고 표현할 시간이네. 꼭 곁에서 항상 지켜주고 싶은 형이자, 나의 사랑."



녀석들은 나에게 감정이라는 것을 입력하지 않았다.

그저 녀석들이 명령하는대로, 누군가를 죽이는 임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조금씩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어째서였을까? 새로운 감정을 깨달은건가?

하지만 감정을 깨닫기 위해서는 관리자쯤 되는 녀석들의 입력이 필요한데.



어쩌면, 조금씩 기계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 속의 외침이 들려온걸까.

가끔 임무를 수행하러 목표 지점으로 향할 때, 주변에서 보이던 모습에 여러가지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런 생각을 깨닫기 시작한 때부터 사실은… 조금씩 변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저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처음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조금씩 나는 이런 잔인한 행동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고 결국은 자의로 그 곳에서 나오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자의로 나간다고 했는데도 녀석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말리지도 않았다.


사실 그 녀석들은… 이렇게 되도록 나를 만들었던 걸까?

그래서 마음 속으론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뭐, 굳이 알고 싶진 않다.



일단 그 곳에서 나오긴 했지만… 막상 무엇을 해야될지 생각해 둔 건 없었다.

생각 자체를 안 해봤다고 하는 게 더 옳은 말이겠지만.

그러다가 우연히 그 두 녀석을 만나게 되었고, 그 녀석들의 뒤에서 관리를 해 주는 역할을 맡곤 했다.

뭐, 나름 나쁘진 않았다. 그렇게 말썽이 가득한 녀석들도 아니었기에.


…한 녀석 빼고.



두 녀석을 통해서 나름대로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다양한 경험들을 쌓기도 했다.

적어도 죽이는 임무만 하던 예전보다는 많이 바빠지긴 했지만, 그래도 그런 잔인한 짓은 안 해도 되니까 좋았다.

어떨 땐 '이렇게 다양한 일들이 있는데 죽이는 짓만 시켰다고?' 라는 생각도 들었다.


…전투병기로 만들어졌으니까 당연한건가.



그렇게 녀석들의 도움을 받고, 녀석들도 각자 할 일이 있다며 언젠가 시간을 잡아서 만나자는 말을 건네며 잠시 헤어졌다.

무덤덤하게 알겠다고 하긴 했지만, 사실 마음 속으론 다시 고민을 했다.

이번엔 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또 후회하고 그러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떤 후회냐고 묻는다면, 아마 전투병기의 삶을 버린 거라고 답하지 않을까?


사실 그 무엇보다도 가장 안정된 삶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 이것보다 더 익숙하고 편한 건 없었다.

마치 살아남기 위해 억지로라도 살아가는 그런 느낌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그 억지스러움이 싫었기에 나온 것이니, 절대 후회는 없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만난, 그 곳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던 장미 신사.

그 색다른 모습이 이 전투병기의 호기심을 이끌었다.

항상 보던 것과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모습이 눈 앞에 보이는데,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아쉬웠고 이 기회를 놓치게 된다면 후회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것마저도 전부 없어져버릴 정도로 후회를 느꼈을 것 같기에.



아마 처음엔 장미 신사도 굉장히 신기했을 것이다.

그저 지나가는 장소에서 지나가는 사람이 될 수도 있었는데, 그런 과정에서 만난 여행 동료라니.

그것도 이렇게 생긴 존재가.


나도 여행이라는 게 처음에는 신기했었다.

그렇게 많은 곳을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인가? 지금까지 나는 항상 한정된 곳에서만 움직였던 것인가?

그런 점이 놀라웠기에.



온갖 다양한 풍경들, 그리고 낮에 바라보는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 들었던 밤의 모습…

모든 것이 나에게 새롭게 느껴졌다.

그래서 처음 만났을 때의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다.


「장미 신사는… 나에게 새로운 것들을 가르쳐주기 위해 저 멀리에서 이 곳까지 도착한 존재인가…?」 라고.



그렇게 시간이 지났을까, 말썽도 많이 부리곤 했지만 장미 신사는 여전히 나를 동료로 받아주며 같이 여행을 다녔다.

중간중간 잔소리를 듣는 일도 많이 저지르긴 했지만, 마음씨가 너그러운 장미 신사는 잔소리 정도로만 끝내고 다시 기운내라며 토닥거려주곤 했다.

아마 내가 기계라서 잔소리같은 걸 들으면 바로 고치겠다고 입력해두는 그런 기능이 있어서, 다음에 똑같은 일을 저지를 확률이 극도로 낮아지는 그런 기계인지라 가능한 일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로메로에 대한 '좋아함' 이라는 감정이 생겼다.

그리고 그 감정은 커져갔다.


하지만 로메로에겐 왠지 그렇지 않을 것 같은 느낌도 있을 테니까, 그저 행동을 받아준다던가 하는 느낌으로 조금의 표현만 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로메로도 내 마음과 똑같은 것 같다는 말을 듣게 되니… 겉으로는 표현하기 힘든 그런 또다른 감정이 솟아올랐다.


아마 이 감정이… '사랑' 이라는 감정일까.



지금까지 새겨질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나에게 새겨줄 존재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감정.


로메로는 그 감정을 나에게 새겨주었다.

그리고 그 감정이 계속해서 유지되도록 곁에 있어주었다.


그렇다는 건… 나도 그만큼 로메로를 따르고 도울 자격이 있다는 거겠지.



"…"


《 각인. 》

《 지금부터 '로메로 필라이트' 를 나의 관리자, 마스터로 입력함. 》

《 '로메로 필라이트' 를 제외한 모든 관리자의 기록들을 영구 삭제함. 》


"…? 무슨 일인가?"

"아, 아냐. 이상한 건 아니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싱긋 웃어보인다.



"지금까지 나의 관리자가 나를 만들었던 녀석들이라면, 이제 관리자를 새롭게 바꾸는 역할을 한 것일 뿐이야."

"관리자…?"

"나를 명령하고, 조종하고, 다룰 수 있는 존재."



살며시 껴안으며 다시 말을 잇는다.



"이제 나에게 이런저런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건, 형 뿐이야.

그러니, 마음껏 명령도 시키고 해줘.

그런데 사실 형은 그렇게 명령같은 걸 시킬 것 같진 않지만."



만약 그 녀석들이 다시 나를 찾아와서 명령을 한다고 해도, 나는 그 녀석들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

오직 나에겐, 로메로 뿐이니까.

나를 조종할 수 있는 건, 로메로 뿐이라고 입력해 뒀으니까.



잘 부탁해. 그리고 고마워.

나의 형이자, 나의 마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