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라는 직업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떨 땐 의사라는 이름을 이용해 남들을 도울 수 있는 것처럼 떠벌리고 다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인물들도 종종 있을 것이다.
지금 이 검은 까마귀처럼.
“그냥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을텐데.”
사실 그는 진짜 의사는 아니었다.
그저 주변에서 의사 노릇을 하는 존재가 많이 보이니 자신도 똑같이 흉내내는 것일 뿐.
그가 지나가는 자리에는 황폐한 건물들과 앙상하게 겨우 모습을 유지하는 자연만이 흔적처럼 남았다.
그래서 주변에서 그를 보며 ‘역병의 근원’ 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았다.
어쩌면, 정말로 역병의 근원이 의사 노릇을 흉내내며 돌아다니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그의 곁에서 웃는 모습이 새겨진 하얀 가면의 또다른 누군가.
“이야- 이거, 꽤 짭짤한 수익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도 검은 가면못지 않게 꽤나 입소문이 자자한 존재였다.
그런 그가 곁에서 따라다니는 이유는, 아마 자신의 이득을 가장 취하기 쉬워서이지 않을까.
“벌써부터 이런 귀한 물건을 찾게 되다니- 아마 이 물건은 주인에게 굉장히 실망하고 있을 겁니다-”
“물건이 그런 감정을 느끼나?”
“도련님은 너무 메말라있어서 문제라니까요- 아하핫!”
주변의 죽음에 관심을 가지는 검은 가면의 까마귀, 주변의 희귀한 물건에 관심을 가지는 하얀 가면의 뱀.
서로 어울리지 않는 듯 하면서도 도와가며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흑백과도 잘 어울리는 듯하다.
“저기로 가 봐. 네가 좋아할만한 게 잔뜩 있어보이니까.”
“의외로 도련님이 그런 것도 보실 줄 아는 겁니까-?”
“까마귀의 촉이지.”
“크, 도련님이 말해주신 대로 가보니 정말 값진 것들이 잔뜩 있지 뭡니까-!”
“그래? 다행이네- 네 기분을 만족시켜준 것 같아서.”
“아! 그러고보니 이 근처에 발자국같은 것이 있었는데, 한 번 살펴보고 오시죠?”
“...발자국이라. 아직 희망을 붙들고 있는 자들의 흔적인가-”
“...”
“오셨습니까아-! 나름 좋은 성과가 있었는지요?”
“희망을 절망으로 바꾸는 일은 언제나 짜릿하지. 덕분에 심심하지 않았어.”
“나름대로 저만의 노하우를 발휘한 것이죠!”
이렇게 말이다.
역병이 퍼지기 전부터, 검은 가면의 까마귀는 재앙을 가져온다는 것으로 유명했다.
어쩌면 그 소문이 더 퍼지면서 이제는 역병까지 퍼트린다는 것으로 번진 것일지도 모른다.
"도련님은 그 소문을 즐기시는지요."
"역병을 퍼트리고, 재앙을 퍼트린다는 그 소문?"
"네에- 그 소문 말입니다."
"뭐, 나쁘지만은 않으니까. 나름 이 몸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소문인가요? 아니면 진실?"
"나름 진실에 가깝지. 나 자신이 하는 일이 그런 일이다보니."
"하핫, 하긴 그렇지 말입니다-"
진정한 사신의 모습을 즐기는 검은 가면의 까마귀.
아니, 진정한 사신의 '모습' 이 아닌 '진정한 사신' 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받아서 해결하는 의뢰도 그런 종류들이었다.
아마 그는 자신의 죽음도 크게 두렵지 않을지도.
"생각해보면, 우리 둘 다 나름대로 소문이 자자한 존재 아닌가."
"그런가요? 흐음- 그렇겠군요-"
"그러는 너도 나름대로 지금의 네 유명세를 즐기고 있지 않나?"
"즐긴다기보단 그냥 할 일을 하는 것 뿐이죠. 나름대로 직업이니까 말입니다-"
"그래도 그건 들키기 쉬운 직업일텐데, 나름 잘 이어가는 게 신기해서."
"아하하, 도련님은 제가 그렇게 쉽게 잡힐 것 같이 보이시는 겁니까-?"
"아니."
"그렇게 잘 알고 계시면서!"
어떻게 보면...
둘 다 각자의 위치에서 숨지 않고 당당하게 다니는 건 비슷한 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자아- 그럼, 도련님!"
"...응?"
"다음 지역으로 재앙을 인도하러 가시죠."
"...푸흣, 좋아. 더 많은 곳에 재앙을 안겨주자고."
그들의 재앙은 언제나 멈추지 않을 것임을 이미 다들 알고 있으리.
그 어떤 용감한 자들이 모여든다고 하더라도, 검은 까마귀를 막을 수 없을 것임을 잘 알기에, 다른 자들은 더 멀리 도망친다.
아니면, 그 자리에서 가만히 죽음을 맞이하며 차라리 그것이 더 편하다고 생각할 존재들도 분명히 있을지도.
"나의 재앙이 그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군."
"아하하,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이미 도련님의 그 자신감은 잘 이용하고 있답니다."
"끝까지 잘 써먹어달라고. 혼자 이렇게 발휘하고 다니면 심심하니까."
"걱정 마시죠- 심심하지 않게 해 드릴테니!"
절대 두려움따윈 가지지 않을 모습의 검은 가면과 하얀 가면의 두 존재.
그들에게 공포라는 것이 존재할까? 그들은 공포를 느낄까?
비록 그들에게 공포라는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주변의 존재들에겐 그들의 존재가 곧 공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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