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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카닉

[바이던트 / 메카닉 베드로] 200919 (P side)

 

 


 

바이던트는 오늘도 그 장소를 찾아왔지만, 베드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흔하게 겪는 일이라서 바이던트도 '오늘은 조금 바쁜 임무라도 있는가보군.' 이라고 생각하며 자신만의 느긋한 시간을 가지다가 자신의 동료들이 모여있는 장소로 복귀하곤 했다. 바이던트 혼자 있을 때에는 여분의 부품을 다듬는다던지, 자신의 창을 다듬는다던지와 같은 행동을 취하며 절대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는 꾸준함을 보이곤 했는데, 그럴 때에도 주변 경계는 늘 늦추지 않았다. 웬만한 메카닉들도 그런 모습에 대단하다고 느끼면서도 저것이 세월의 흐름을 통해 깨달은 연륜이구나, 생각하기도 했다.

 

 

"요즘은 꽤 바쁜가보군."

 

 

혼자서 조용히 중얼거리듯 말하며 부품을 다듬는 바이던트. 혹시라도 자신의 그림자가 움찔거리진 않는지 종종 관찰해보곤 하지만 큰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하긴, 그림자를 다룬다지만 다른 존재의 그림자까지 막 다루진 않겠지.' 라고 조용히 중얼거리다가 다시 부품을 다듬었다.

 

겉으로는 크게 손상되거나, 부식되거나, 망가져보이는 곳이 없어보이지만 바이던트가 손을 대는 부분마다 숨겨져있는 결함이 보이는 것이 정말 그동안 부품을 다듬은 실력이 있구나, 라고 생각이 될 정도였다. 그래서 일부 메카닉들은 바이던트에게 부품을 맡기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바이던트는 의외로 그런 다른 메카닉들의 부품까지 손을 봐주는 모습을 보였다. 그럴 때마다 다른 메카닉들은 '내가 알던 그 냉정한 메카닉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의문을 가지곤 했지만, 이런 것도 다 연륜이겠지- 라고 생각하며 바이던트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언젠가 베드로의 부품도 다듬어주고 싶은데."

 

 

물론 바이던트도 알고 있다. 베드로가 누군가의 손길이 닿는 것에 아직은 꽤 적대적이라는 것을. 그래서 이렇게 혼자서 부품을 다듬고 있을 때 혼잣말이나마 할 수 있는 것일 터.

 

 


 

 

"...푸핫, 그래?"

 

 

지금은 파괴된 것처럼, 뼈대만 남아있는 매우 높은 기둥에 혼자 유유히 앉아있는 베드로. 웬만한 존재들이라면 그 곳에 누군가가 앉아있다는 것을 바로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장소이지만, 그림자를 조종할 수 있는 메카닉이었으니 그런 그림자를 이용해 자신의 모습을 숨기는 건 당연하게도 그에겐 어렵지 않은 일이다.

 

주변의 존재에게도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심지어 바이던트에게도 자신의 모습을 숨기며 아주 높은 곳에서 바이던트를 내려다보며 바이던트의 독백처럼 자신도 혼자서 독백을 한다.

 


 

...너는, 참 웃긴 메카닉이야.

너무 웃겨서 처음엔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는데.

 

 

흠, 글쎄.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그냥 단순하게 같은 메카닉이라서, 조금은 멍청해보여서 그랬던 걸까.

 

 

여전히 잘 모르겠네- 이렇게 메카닉끼리 얘기를 나누는 것도 처음이라.

 

 

그래도 너라서 좀 다행인 것 같기도 하고.

다른 메카닉들과는 다르게, 너는 그나마 연륜이 있는 고철... 아니, 메카닉이잖아.

 

 

나는 아직 모르는 게 많거든.

네 앞에서 멋있고 잘난 메카닉인 척 하지만, 왠지 네 앞에선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이란 말이지.

물론 내가 멋있고 잘난 건 여전히 변함없고.

 

 

...뭐, 그런 거 있잖아.

아무리 실력이 더 높아도, 세월의 연륜 앞에서는 무색하다고.

그게... 딱 나와 너 사이의 모습같거든.

 

 

맨날 고철이라고 하긴 해도...

그 고철 사이에 녹아있는 너의 연륜은 나를 포함한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지.

 

 

조금 시간이 걸릴지는 몰라도,

언젠간 나도 너의 연륜을 따라잡고 싶거든.

 

 

더 많은 지식을 얻고, 더 많은 실력을 쌓고 싶으니까.

멋있어지고, 잘나려면 이런 욕심을 부릴 필요도 있으니.

 

 

...내일도 오겠지, 너는.

그때 보자고.

 


 

혼자만의 독백을 끝낸 베드로는 다시 그림자에 몸을 숨기며 자신만의 장소로 몸을 옮겼다. 그제서야 바이던트는 어디선가 무언가가 움직였다는 것을 느낀 듯 주변을 둘러보다가 베드로가 앉아있던 높은 곳을 바라보았지만, 이미 그 곳에는 자리를 옮겨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흠, 바람이라도 불었나."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순찰을 너무 많이 해서 피곤함이라도 쌓였나보군.' 이라고 중얼거리듯 말하곤 살짝 몸을 풀어주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베드로가 오늘은 이 곳에 오지 않을 것 같으니 자신도 원래의 장소로 돌아가려는 모양새였다.

 

 

"내일은 만날 수 있기를."

 

 

혼자 중얼거리며 등을 돌려 원래의 장소로 돌아갈 때, 반대쪽에 있던 베드로는 살짝 그림자 속에서 몸을 드러내며 바이던트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한 목소리로 답하듯 말을 꺼냈다.

 

 

"그래."

 

 

살짝 웃는 듯한 모습으로 베드로는 다시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