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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카닉

[바이던트 / 메카닉 베드로] 200929 (P side)

 

 


 

메카닉의 삶을 살다보면, 여전히 참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많이 깨닫게 되는 것 같단 말이지. 특히 그 일들을 최근에 엄청나게 겪고 있어서,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될 지 가늠할 수도 없을 정도라니까.

 

특히 그 중에서도, 나 말고 다른 메카닉을 만나서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 과정이 참 웃기면서도 놀랍다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조언이나 충고같은 걸 듣는 그런 나약한 메카닉은 아니지만, 적어도 연륜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걸 들어서 내가 더욱 더 잘난 메카닉이 되어갈 수 있다면 가끔은 아래에 있어주는 척 하는 것도 나쁘진 않으니까 말이야.

 

 

근데 그렇게 연륜을 쌓을 정도면 정말 고철 아닌가? 그럴 때마다 고철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좀 놀리는 맛이 있는 것 같아서 재미있는 것 같기도 하고. 물론 놀리는 게 아니고 내 눈에는 진짜 고철처럼 보이긴 하지만 어쩔 수 있나. 녀석이 인정을 안 하...진 않는구나, 어떨 땐 고철이라고 스스로 말하니까. 그럴 땐 좀 당황스럽더라.

 

어쨌거나... 오늘도 나는 내 할 일을 해야지. 내가 여기 느긋하게 놀러온 것도 아니고.

 

 

글쎄, 내가 무슨 일을 하냐고? 그림자를 다루려면 그만큼 충분한 그림자가 필요하지. 그래서 이 곳에 존재하는 그림자들을 모으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만약 그림자가 없다면? 그럼 이 곳에서 볼 일은 없어지는거지. 볼 일이 없으면? 다른 곳으로 가는거고.

 

...근데 지금은 남아있는 그림자도 그럭저럭 더 있고, 그 고철 녀석에게서 좀 더 듣고 싶은 이야기도 많으니까 뭐 여차저차 더 있다가 가는거지.

 

 

그림자라는 건 당연히 밤보단 낮에 더 많이 보이고, 그만큼 더 수집하는 양도 많지만 그렇다고 밤에 피어나는 그림자들을 무시할 순 없는 법이지. 오히려 밤에 보이는 그림자가 더 무섭다고들 말하잖아? 난 그렇게 누군가가 나를 두려워하게 만드는 게 마음에 들어. 실제로도 꽤 두렵겠지.

 

흠. 내 알 바는 아니지만.

 

 

그래서, 고철은 오늘도 거기에 왔나? 궁금하면 직접 가봐야지. 항상 가보면 부품을 다듬고 있던데, 저렇게 직접 자신이나 누군가가 부품을 다듬는 건 참 귀찮은 일일 것 같단 말이야. 나는 그냥 그림자만 있으면 뭐든지 다 해결할 수 있는데, 역시 내가 너무 잘나서 어쩌나. 고철은 고철답게 꾸준히 다듬어야지.

 

...뭐, 그래도 좀 호기심이 생겨서 저번에 하나 슬쩍 가져갔는데 화분으로 쓸만하더라. 지금도 그럭저럭 잘 쓰고 있고, 고철이라지만 이런 쪽으로 내구도 하나는 확실하네. 나중에 더 훔칠까.

 

 

어쨌거나, 오늘도 오긴 왔네. 구석진 곳에서 잠들어있는 게 조금 웃기지만. 저런 곳에 있다고 다른 녀석들이 눈치 못 챌 것 같나... 뭐, 그림자 사이에 어떻게 잘 숨어있는 걸 보니 웬만해선 들킬 일이 없을 것 같긴 하네. 이렇게 그림자를 다루는 이 잘난 메카닉 앞에선 아무런 소용도 없겠지만.

 

잠이나 깨워야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톡톡 건드리는 건 귀찮으니 말로만 대충 깨워보려고 했는데, 이 고철은 아무래도 꿈을 꾸고 있는 모양이더라. 나를 보면서 주인이라고 하질 않나...

 

 

"...주인?"

"...헛것을 보고 있나, 빨리 정신차려."

"그렇지만..."

 

 

역시 안 건드리니까 제대로 잠이 안 깨나보군. 대충 근처로 다가가선 발로 톡 건드리기만 했지. (사실 톡 건드렸다기보단 좀 세게 걷어찬 느낌도 없진 않지만, 내 신체 아니니까 상관없는 일이야.) 그렇게 하니까 그제서야 좀 정신을 차리는 것 같더라.

 

여전히 비몽사몽인 것 같길래 나름 따끔한 충고도 한 마디 해주고.

 

 

"그렇게 잠들어있으면 가장 먼저 고장난다."

"...후후, 그럴지도 모르겠군. 그래도 나름 위치선정을 한 것이라네."

"다 보이는 데 무슨."

 

 

...뭐, 어쨌거나 잘 잔 것 같군. 항상 보고 있으면 이렇게 잠들어있는 것 같은데... 차라리 여기에 이렇게 억지로 나오는 것보단 차라리 동료들이랑 같이 있는 게 낫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요즘, 고철 너 엄청 피곤해 보이는데."

"괜찮다네. 항상 있는 일이니."

"...쓸데없이 까불지 말라고."

 

 

에휴, 역시 저 고철의 고집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니까. 그냥 가끔은 내 말도 좀 순순히 듣고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하여간."

 

 

네가 내 말을 바로 들을 것 같다고 예상하지도 않았지만, 언제나 저 고집을 보고 있으면 나름대로 자신만의 어떤 신념같은 게 있어서 그런 거겠지- 싶은 생각만 든다. 과연 뭐가 그 신념을 만든걸까? 그런 걸 알아내고 싶은 마음도 없진 않지.

 

그래서, 이번엔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건데? 오늘도 나름대로 이 잘난 메카닉의 흥미를 끌만한 이야기를 가지고 왔겠지? 만약 아니면 가만 안 둘 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