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보니,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
"무엇이든 다 괜찮습니다. 어떤 것이 궁금하신지요?"
"뭔가 갑작스럽긴 하겠지만..."
잠깐 말을 더듬거리며 고민하다가 다시 말을 이어나가는 카르디스님.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 예전부터 한번쯤 물어보고 싶었지만 계속 물어봐도 될지 고민했던 것이 조금은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떤 질문이길래 그렇게 카르디스님을 고민하게 만들었던 걸까요?
"상반신의 그 파츠는... 언제부터 재배치하게 된 거야?"
"네? 아아..."
카르디스님의 질문에 살짝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라는 것처럼 몸이 살짝 굳었다가 곧 약간의 웃음소리를 내며 카르디스님의 질문에 답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카르디스님은 제 상반신 파츠를 교체하기 이전부터 알고 지냈던 분이시니까, 언제부턴가 제 교체된 상반신 파츠를 보며 조금은 의아함이나 의문을 가지고 계셨을 수도 있었겠죠. 아마 드디어 그 의문에 대한 해결을 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일단 확실한 건- 더이상 전투나 전쟁과 관련된 몸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교체했다고 할 수 있겠죠."
"그렇구나. 생각해보면, 이전의 상반신은 갑주같았지."
"방패에 걸맞게 전체적으로 무장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용병 시절에는 아무래도 그 어느 때보다도 신체의 파츠를 더욱 보호할 필요가 있었으니까요. 물론 당시의 정비가 지금의 정비보다 훨씬 받기 좋았던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매일마다 정비를 받으러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요. 저희들같은 거대한 메카닉이 세상에 널린 것도 아니고... 그렇기에 부품이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지요. 최대한 그 한정된 부품을 아끼기 위해서 저희들이 먼저 나서서 신체의 중요한 파츠를 최대한 보호할 수 있는 식으로 파츠를 배치했었습니다.
뭐, 다른 메카닉들에 비하면 제가 조금 더 그런 중요함에 민감했던 것도 있겠지만요.
"그 때의 모습과 지금의 네 모습을 보고 있으면... 확실히 좀 시원해보이는 느낌이야."
"아무래도 꽉 막혀있는 모습보단 시원한 모습이 유기체에게도, 같은 메크에게도 도움이 될 테니까요."
"그런가? 뭐, 아이기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런 거겠지."
"저와 함께 활동했던 다른 메크들도, 이렇게 다 시원한 모습으로 다니기도 했으니... 거기에 휘말린 기분도 없진 않지만요."
"다른 동료들도 다 너처럼 좋은 녀석들이겠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그 동료들도 같이 데려와도 될까요?"
"음, 너무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괜찮을지도?"
"하하, 알겠습니다."
방해가 되지 않는 한에서- 라고 하니... 왠지 어떤 동료는 조금 귀찮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도 그 분도 어떻게 잘 이야기하면 적당히 성격을 죽인다거나 그렇게 해 주시는 분이긴 하니까, 아무튼 괜찮을 것이라는 느낌도 듭니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제 파츠를 다시 유심히 바라보는 카르디스님.
"생명체들의 근육을 보는 것 같은 모습이네."
"다들 그렇게 생각하시더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긴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이 모습이 마음에 듭니다."
"어떤 부분에서?"
"좀 더 생명체들과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겉모습으로 느껴지는 그런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비슷한 모습이니까, 오히려 동질감을 느끼게 만든다- 그런 느낌인걸까."
"그런 셈이죠. 덩치도 다르고, 서로 살아가는 방식같은 것도 다르고, 몸을 이루고 있는 것들도 다 다르지만... 적어도 서로가 비슷해질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걸 어필하는 느낌일 수도 있겠죠."
"은근히 생명체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 있는 게 느껴져."
"모두가 다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원하니까요."
"아이기스라면 분명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을거야."
용병 생활과는 이제 완전히 손을 뗀 몸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 방패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이 방패를 사용하고 싶습니다. 어디선가 위험한 물건이 날아온다던지, 아니면 무언가가 돌진하는 것을 막아낸다던지... 굳이 용병 생활의 그런 전투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방패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은 많다고 생각하니까요.
신체의 파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왠지 지금이 아니면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카르디스님에게 말을 꺼냈습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제 신체의 파츠를 확인하고 수리해주실 수 있을까요?"
"음... 내가 가지고 있는 파츠들은 그렇게 상태가 좋지 않은데..."
"아,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파츠로 부탁드리고 싶어서요."
"그러면 괜찮을 것 같아. 아무래도 등이나 뒷통수같은 부분이겠지?"
"맞습니다. 제가 그 부분까진 손이 닿질 않아서... 확인하기 어렵더군요."
"충분히 그럴만도 하지. 도와줄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감사를 표하곤 가지고 있는 파츠들을 카르디스님에게 넘겨 주었습니다. 카르디스님은 제 등과 뒷통수같은, 제 손이 닿지 않는 부분들을 유심히 확인하곤 파츠를 교체하거나, 아니면 뻣뻣해진 파츠에 윤활 느낌을 주는 정도로 다듬는 등 여러가지 손길을 많이 전달해 주었습니다. 아무래도 혼자서 연구를 하거나 무언가를 하는 것에 능숙하다는 것이 카르디스님의 손길에서 꽤나 느껴졌습니다.
저는 분명 무난하게 그동안 지내왔다고 생각했는데, 카르디스님의 손길이 바빠지는 것과 교체한 파츠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꽤나 험난한 여정을 지내왔던 모양입니다. 오죽하면 거의 낡아서 너덜해진 파츠들도 있는 걸 보면... 제가 방패 역할을 너무 열심히 했던 걸까요? 저렇게 너덜해졌는데도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던 것도 내심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뭔가 고통에 무뎌진 건 아니지만... 조금은 낯선 기분이 든다고나 할까요.
그렇게 정비를 받고 있으니 '휴우-' 하는 카르디스님의 소리와 함께 장비들을 내려놓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아무래도 정비가 다 끝난 모양인지 제 몸을 톡톡 건드리면서 "다 끝났어. 오래 기다렸지?" 라고 말하는 카르디스님의 목소리가 들리는군요.
그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며 웃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살짝 숙여 존경의 의미를 표현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새로운 몸을 가진 기분이 드네요."
"파츠가 부족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딱 들어맞았네."
"정비 도중에 파츠가 부족해지는 건 정말 번거로운 일이긴 하죠. 다행히 딱 맞아서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그나저나 파츠를 너무 많이 쓴 건 아닌지, 조금 미안해지기도 하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파츠를 다시 구할 수 있는 경로를 미리 만들어 두었으니까요."
"역시 언제나 준비성이 좋네. 아이기스다워."
교체하고 남은 파츠들과 이전에 제 등이나 뒷통수에 있었던 낡은 파츠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문득 제 뒷부분도 이렇게 잔뜩 파츠들을 교체해야 될 정도였는데, 카르디스님은 어떤 상태인지 조금 궁금한 마음에 조심스럽게 이런저런 질문을 건넸습니다.
"혹시, 카르디스님의 파츠도 제가 정비해 드려도 괜찮을까요?"
"응? 아, 굳이 내 것까지 안 해도 괜찮은데..."
"그래도 도와주신 것에 대한 보답은 하고 싶은걸요."
"그렇다면 딱히 거절하진 않겠지만... 너무 파츠들을 많이 쓰진 않아도 돼."
"이런 일에는 그런 것들을 아끼면 안 된답니다, 하하."
가볍게 웃는 목소리와 함께 카르디스님의 뒷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파츠들을 확인해 보았고, 확실히 몇몇 부분들은 낡은 것이 보였습니다. 생각해보니, 이전부터 카르디스님과 함께 어딘가를 걷거나 잠깐 움직일 때마다 약간의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긴 했었는데 당시엔 크게 신경쓰지 않았지만 이렇게 파츠들을 확인해 보니 오히려 그 때 진작에 확인해 드렸어야 되는건데-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제가 가지고 있는 파츠들 중에서 카르디스님의 색깔과 잘 어울리는 파츠들을 골라서 카르디스님의 파츠들도 교체해 주었고, 그런 모습을 보며 다시 조금씩 시간은 흘러갔습니다.
"...파츠, 많이 안 썼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말씀드렸듯 파츠는 언제나 구비할 수 있으니까요."
"아무튼, 고마워. 이렇게 또 도움을 받네..."
"언제나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저를 불러주세요."
"적당히 방해되지 않을 때, 불러도 될까?"
"하하, 저는 언제나 방해되지 않습니다만."
그렇게 이런저런 사소한 이야기들이, 저희들에겐 꽤나 긴 이야기들이 된다는 게 재미있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또 어떤 사소한 이야기가 저희들의 시간 도둑이 될까요? 꽤나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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