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otL

[Eden of the Lamb (2P AU)] 221010 -RE:BIRTH-

 

 

 

 


 

 

질서, 충족, 평화, 치유... 대부분의 존재들은 이런 평온하고 안정적인 것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런 평온함에 질려서 악당이 되어 새로운 복종의 세계를 원하는 경우도 있었다.

 

 

평온함을 추구하는 주교들이 모여 각자의 교단을 만들어 생활하고 있던 어느 날, 갑작스럽게 이교도의 무리들이 각 교단에 선포를 하듯 외쳤다. 그 내용은 "곧 혼돈이 모든 세계를 잡아먹을 것이며, 이 혼돈이 모든 것의 왕이 된다!" 라는 내용이었고, 그 내용에 걸맞게 교단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존재들을 잡아서 무자비하게 죽여버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당연히 그런 모습을 본 교단의 추종자들은 혼란에 빠졌고, 그런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각 교단의 주교들은 크나큰 노력을 했다. 다행히 그런 주교들의 노력에 교단의 혼란은 조금씩 잠들어가기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이교도 무리의 선포는 끝나지 않은 법.

 

...이 사태를 잠재울 주인공도, 그 이교도 무리의 혼란에 갑작스레 휘말려든 존재 중 하나였다.

 

 


 

 

평화롭게 살아가던 도중, 어린 양은 이교도 무리의 혼란에 의해 모든 것을 잃고 휘말려버렸다. 함께 지내던 동료, 함께 지내던 가족... 상상하는 모든 것들을 전부.

사실 어린 양도 다른 교단으로 전향을 갈 지 아니면 이교도 무리를 피해 조용히 숨어 살아갈지 이미 결정한 것은 존재했었지만, 그런 결정을 실행하기도 전에 이교도에게 먼저 붙잡혀 자신이 세웠던 계획들이 전부 물거품이 된 것이었다.

 

자신이 세운 계획들이 전부 물거품이 되고, 이교도 무리에게 결박당한 채 사형대 앞으로 나서는 어린 양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무거웠다. 어린 양은 그저 이 행복하고 평온한 낙원 속에서 영원히 살아가길 원했지만, 그런 희망은 이교도들에게 전부 짓밟히고 결국 지금의 눈 앞에 마주하게 된 것은 그들의 희생양이 되어가는 무거운 발걸음 뿐이었다.

 

 

이교도 무리의 절대권력자들이 한 곳에 모여있고, 그 앞에는 자신들의 제물을 위한 마법진같은 것이 있었다. 이교도 무리를 만든 절대권력자들 중에서 특정한 존재는 그 마법진 위에서 왕관의 힘을 빌려 번제를 할 수 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항상 '그 소문은 사실인가?' 에 대한 답은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런 소문을 알려 줄 존재가 이미 번제되어 이교도 무리의 힘이 되었기 때문이지만.

어린 양도 그들의 번제 제물이 될 예정이었고, 어린 양은 앞으로 가기 싫다고 발버둥을 쳤지만 이교도 무리의 힘을 혼자서 감당할 수는 없는 법. 억지로 떠밀리듯 마법진 위에 서 있었고, 그들의 무리 사이에서 왕관의 힘을 가진 자가 나타나 번제를 준비한다.

 

번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주변의 다른 무리의 일원들도 한 마음, 한 목소리로 번제 의식에 걸맞는 주문을 외우듯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이 혼돈을 더 거대하게 만들, 위대한 힘을 주소서..."

 

 

곧 마법진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고, 자신의 최후를 만들게 될 무언가를 마주하기 싫었던 어린 양은 눈을 질끈 감았다.

 

 


 

 

...

......

 

고요하다.

마치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듯한 적막감이 느껴진다.

 

 

그런 생각을 가지며 어린 양은, 조금씩 눈을 떴다.

...아니, 지금 생각해보면 눈을 뜰 수 있다는 점이 갑자기 의문스럽기 시작했다. 분명 자신은 죽었을 텐데, 왜 이렇게 평상시의 모습처럼 눈이 떠지는 것일까.

 

그리고 그 답은, 머지않아 곧 어린 양에게 들려왔다.

 

 

"...제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다가와 주시겠습니까?"

 

 

어디선가 어렴풋이 들려오는 목소리를 향해, 어린 양은 발걸음을 옮겼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무거웠던 발걸음이 어느새 가벼워진 것이 느껴진다. 어쩌면 '자신은 정말로 죽었는데, 그 죽은 이후의 세계를 여행하고 있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며 어린 양은 목소리를 따라갔다.

목소리를 따라 도착한 곳은, 주교를 상징하는 옷차림을 입은 존재와 그를 곁에서 보좌하는 두 명의 존재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린 양이여."

"어서 와! 죽은 자들의 세계는 처음이지?"

"너무 겁먹진 마- 잡아먹으려고 부른 건 아니니까."

 

 

어린 양은 그런 모습을 보며 조금은 눈치챌 수 있었다. 이것도 항상 소문으로만 들었던, 바깥에서 종종 볼 수 있었던 '질서, 충족, 평화, 치유' 가 아닌 또다른 무언가를 담당하는 주교가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소문. 이 소문도 앞서 말했던 번제와 관련된 소문처럼 사실을 아는 존재가 없었다.

어쩌다보니 두 가지의 소문의 사실을 알게 되어 마음 속으로 놀라긴 했지만, 그런 놀람을 느낄 시간도 없이 자신을 이 곳으로 부른 존재는 말을 이어나갔다.

 

 

"저는, '기다리는 자'."

"그리고 생명을 담당하는 자!"

"우리들은 이 분을 보호하고, 다른 세계에서 활동하는 생명을 주시하고 확인하는 존재들!"

 

 

또다른 무언가. 그것은 '생명'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자신을 이 곳에 부른 이유가 어렴풋이 짐작되는 것 같으면서도 그 많은 존재들 중에서도 왜 하필 나일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궁금해지기 시작한 것들을 기다리는 자에게 물어보는 어린 양.

기다리는 자도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조금씩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대의 숨결은 이미 사그라들었으나, 아직 그대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막중한 일을 왜 본인이 맡게 되었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

"그 이유는 단순하면서도 꽤 의미있는 이유일거야."

 

 

잠시 어린 양을 둘러보곤 다시 말을 꺼내는 기다리는 자.

 

 

"그 누구보다도 평온을 원했고, 그 누구보다도 다른 동족, 동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즐거워하던 모습이었기에... 이렇게나마 다시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어주고 싶었습니다."

"네가 이교도들의 제물이 된 것도 어쩌면 그들을 위한 너의 희생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렇게 헤어지면 아쉽잖아?"

 

 

그들이 하는 말에 조금은 공감이 되는 어린 양. 역시 다른 세계에서 생명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 증명하듯 자연스럽게 이유를 대는 그들의 모습에 왠지 신뢰가 생기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라도 다시 눈을 떠서 자신이 원했던 평온을 되찾을 수 있다면, 자신과 함께 시간을 보냈던 동족, 동료, 가족... 그런 존재들을 만나서 그들을 보호해 줄 수 있다면, 무엇이 두려울까?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거절하지 않고 흔쾌히 받아들이는 모습에 기다리는 자는 싱긋 웃어보였다.

 

 

"제 힘을 빌려드리겠습니다. 부디, 그들이 원하는 혼돈이 더 커지지 않도록, 그들을 제압해주시길."

 

 

기다리는 자의 부탁에 고개를 끄덕거리는 어린 양. 한편으로는 주변에서 그를 보좌하는 존재들을 살짝 바라보곤 저 존재들도 자신처럼 죽음을 맞이하고 이 곳에 오게 된 것이냐고 물어보았고, 그 질문에 기다리는 자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이들은, 스스로 저를 선택했습니다."

 

 

기다리는 자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바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내는 두 존재들.

 

 

"생명의 권능 아래에서 어떤 생명이 위협받고 있는지 지켜보는 존재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그렇지?"

"다들 고생하는데 우리들도 가만히 있기엔 좀 그렇잖아?"

"그렇게 지켜보다가 너를 결정하게 된 것이기도 하고."

 

 

한결같이 미소짓는 두 존재들. 한편으로는 그런 미소 사이에서 약간의 비장함이 묻어나오는 말을 꺼냈다.

 

 

 

"삶이라는 건 탄생과 죽음 사이에서의 선택이라고들 하지."

"그래서 우리는 선택한거야. 기다리는 자를 섬기며 다른 생명을 보호하겠다고."

 

 

그 말을 듣고 있으니 어린 양의 마음 속에도 어떤 결심이 조금씩 새겨지기 시작했다. '온전히 나 자신의 선택을 통해 다시 모두를 지키겠다' 라고. 그리고 그런 생각을 읽은 것마냥 두 존재들도 싱긋 웃으며 격려와 응원을 건네는 모습이었다.

 

 

"너를 다시 태어나게 한 건 우리들의 선택이었지만, 이 혼돈을 잠재우는 건 너의 선택으로 하나둘 이루어지는 거니까."

"그러니 앞으로 결정하게 될 너의 선택에 한 점 후회가 없길 바랄게."

 

 

고개를 끄덕거리곤 기다리는 자의 힘을 받으며 조금씩 눈을 감는다.

힘이 들어오는 것이 느껴지고, 한편으론 또다른 어딘가로 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린 양이 다시 눈을 떴을 땐, 어떤 넓은 공터에 있었다. 정확히는, 단순한 공터가 아닌... 주변에 무덤이 많은 공터였다. 아무래도 번제되었기 때문에 시체도 같이 사라졌을 테니, 다른 곳에서 눈을 뜬다고 해도 마냥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아무튼 주변에 아무도 없는 고요함이 마치 죽은 자들의 세계에 처음 갔을 때의 그 느낌과 비슷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 고요함 이후의 느낌은 다른 느낌이었다.

주변의 공기마저 비장해지는, 어린 양의 결심이 느껴졌으니까.

 

 

어린 양은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껏 지키지 못했던, 평온을 다시 되찾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