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님과 재회한 이후로 조금씩 마음 한구석에서 피어오르고 있던 감정.
...다른 것들과는 다르게 왜인지 주인님 앞에서 쉽게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
언젠가는 이 감정을 주인님에게 표현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며 기약없는 시간을 보냈다.
한편으로는, 내가 먼저 나서기 전에 다른 추종자가 어린 양 교주님에게 청혼하는 모습을 보며 저런 식으로 하면 되겠구나- 라고 마음 속으로 다짐하며 배우는 과정을 거쳐온 것도 있었다. 이런 걸 굳이 배워서 해야 될 정도인가?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표현을 해 본 적 없었던 나에게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도전이나 다름없었다.
문득 그렇게 어떤 추종자가 어린 양 교주님에게 청혼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생각보다 이 교단의 교주님께서 가지는 마음도 꽤나 개방적이라는 걸 느낄 수도 있었다. 분명 저번에 누군가의 청혼을 받고 결혼한 것 같았는데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면 다른 추종자의 청혼을 받아서 또 결혼을 열었으니... 뭐, 이 교단이니까 가능한 것인가- 싶기도 하다.
...생각해보니 그렇게 누군가의 청혼을 받으면 그 이전에 청혼을 받았던 추종자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던데, 어디로 갔을까. 그건... 흠.
그런데 지금 내가 다른 추종자를 생각할 상황인가? 아무튼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고민하고 있던 중, 어느 날엔 단탈리온이 옆에 와서는 내 모습을 보곤 고개를 갸웃거리며 꽤나 궁금해하는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형, 뭘 그리 고민하고 있어?"
"아... 그게..."
뜸을 들이는 내 모습을 보며 단탈리온은 큭큭 웃고는 조용히 다가와선 늘 벗고 다니던 모자를 뒤집어쓰곤 마치 은밀한 작전을 짜는 것마냥 평소보단 조금 내려앉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한편 그 내려앉은 목소리 사이에서는 꽤나 진지한 면이 섞여있는 것 같기도 했다.
"비밀로 해 줄 테니까~ 부담없이 얘기하라구~"
"...정말로, 비밀로 해 주는 겁니다?"
"난 형 배신 안 해~"
사실 조금은 못미더운 느낌이 없긴 했어도, 그래도 늘 나를 도와주고 나에게 도움을 주기도 했었기에 큰 맘 먹고 단탈리온에게 지금의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을 들려주었다. 내 고민을 들은 단탈리온은 아주 짧게 생각했다가 곧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그 고민에 대한 해답을 건넸다.
"마음을 표현하는 게 어렵긴 해~ 그치만 형이 주인님께 바친 헌신이나 정성같은 걸 생각하면 주인님이 형을 차갑게 버리진 않을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야-"
"...그런가?"
"물론이지!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구~"
단탈리온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마냥 부정할 수만은 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그런 주인님의 모습을 의외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주인님이 보여준 행동이나 말같은 것들을 생각하면 그렇게 한순간에 차갑게 대하리라곤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중, 단탈리온은 다시 이야기를 마저 꺼내며 나를 격려해주었다.
"만약 주인님이 거절한다고 해도, 여전히 자신의 곁에 남아달라고는 할 거 아냐?"
"생각해보니, 그렇긴 하겠네..."
"고작 고백하는 거 거절했다고 내 추종자가 되지 말라고 할 정도로 쪼잔한 주인님은 아닐 테니까! 그러니 일단 저지르고 보는거지~"
"..."
단탈리온의 조언을 듣고 있으니, 왠지 평소보다 마음이 가벼워지고 조금은 자신감이 생긴 기분이었다. 누군가가 옆에서 도움을 주는 게 이렇게 큰 영향을 끼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지만... 덕분에 머지 않아 곧 주인님에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분위기가 마음 속에서 느껴졌다.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것 같다.
화창한 날씨의 어느 날. 이렇게 화창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고, 부드러운 바람이 계속해서 불어오고 있는 편안한 날이었다. 그런 시간 속에서도 여전히 주인님은 교단 구석에서 다른 추종자들이 하는 일들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그런 주인님을 맞이하러 발걸음을 옮겼다.
주인님을 향해 다가가는 나의 모습을 보며 주인님도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자세를 취하며 내가 오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인님의 아래에서 무릎을 꿇으며 오늘의 맹세를 시작했다.
"오늘 하루도, 주인님의 축복이 가득하길 바라나이다."
"죽음을 따르는 생명에게, 늘 축복이 가득하길."
평소같았으면 간단한 맹세를 끝내고 하던 일을 하러 가기 위해 일어서서 움직였을 테지만, 오늘만큼은 조금 생각이 있다는 걸 알려주듯 그 자세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주인님도 자연스럽게 나에게 질문을 꺼냈다.
"할 말이 있는가, 크로셀이여."
"...네, 주인님. 조금은, 이상할 수도 있는 말이지만요."
"이상할 수도 있는 건, 역시 들어봐야 알 수 있겠지."
자연스럽게 눈높이를 맞춰주는 주인님과 시선을 마주하고 있으니 다시 심장이 두근거려서 말하는 걸 망설이게 되었지만,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올 지 모르는 기회였기에 눈을 잠깐 감았다가 뜨곤 다시 주인님과 시선을 마주하며 말을 꺼냈다.
"과거에 주인님을 섬겼을 때에는 몰랐지만... 주인님과 다시 만난 이후로 조금씩..."
평소보다 더 더듬거리게 되는 말을 잠시 진정하기 위해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이런 과정에서 꽤나 진지하게 나를 바라보는 주인님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무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마음 속에서 커지고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군. ...그 감정이 어떤 것일까."
아마 주인님도 마음 속으로는 내가 어떤 감정을 마음 속에서 가지고 있을지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그리고 개인적으론 주인님께서 생각하고 있는 감정은 후회, 절망 등 그런 부정적인 감정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보게 된다. 아무튼 그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주인님을 제대로 바라보았다.
"...주인님을, 사랑합니다."
"..."
"...교주님의 추종자가 교주님을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저도, 주인님을... 사랑합니다."
여전히 주인님은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약간 당황한 듯 눈이 크게 떠진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마 어떤 말을 꺼내야 할 지 고민하고 있는 것이라는 걸 눈치챌 수도 있었다. ...과연 주인님께서는, 나의 고백을 듣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고, 주인님의 그 생각을 들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그저 너희들과 똑같은 추종자일 뿐이다."
어쩌면, 예상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지금의 주인님은, 힘을 가진 존재가 아닌 힘을 잃고 교주님의 아래에서 살아가는 추종자일 뿐이니까. 하지만 내가 그걸 모르고 주인님에게 고백한 건 절대 아니다.
"저는 주인님의 힘에 빠져든 것이 아닙니다. ...저는...
주인님의 존재 자체에 빠져든 것입니다."
뜸들이다가 말한 한 마디에 다시 놀란 듯 표정이 굳어지는 주인님. 그리고 그 모습을 잠깐 보았다가 다시 말을 꺼냈다.
"...주인님의 존재 자체가, 저를 구원해 주었으니까요."
지금까지 주인님의 앞에서 한 말들은, 전부 거짓 하나 섞이지 않은 사실이었다. 주인님이 직접 자신의 힘으로 나를 구해준 것이 아닌 주인님의 추종자들이 나를 구해준 것이니 그건 곧 주인님의 존재가 나를 구해준 것이나 다름없었고, 그런 추종자들의 모습을 본받아 주인님을 섬길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것이었으니까.
비록 주인님께서 우리를 배신하고 교단의 파멸을 불렀을지라도, 끝까지 그 구원을 간직하고 그 구원에 보답하기 위해 다시 주인님을 찾아왔으니... 그 점으로도 충분히 주인님에게는 믿을 수 있는, 충실한 존재로 보이지 않을까.
나의 말에 그 어느 때보다도 깊은 고민을 하던 주인님은, 그 어떤 때보다도 진지한 모습으로(마치 소문으로만 들었던 기다리는 자 시절의 주인님을 보는 것처럼) 나에게 질문을 했다.
"크로셀이여, 질문을 하겠다."
"네, 주인님."
잠시 조용한 분위기가 유지되다가, 적막을 깨기 시작하는 주인님의 목소리.
"...그 생각과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할 수 있겠느냐?"
주인님의 질문에, 잠깐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제 삶에서 주인님과 관련된 선택은 언제나 후회 한 점 없었습니다. 주인님이 저희들을 배신했던 때에는 아주 잠깐 주인님을 후회했더라도, 지금은 그렇게 후회했던 그 당시의 저를 후회하고 있습니다.
...왜 그 당시의 저를 후회했냐고 물으신다면...
결국 저는 이렇게 주인님을 다시 찾아올 운명이었으니까요."
그렇게 말하곤, 주인님을 향해 싱긋 웃어보이며 종지부를 찍듯 말을 마무리했다.
"언제나 앞으로도 제 인생에서, 제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들어 준 주인님을 영원히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나의 말을 듣고 깊게 고민하던 주인님도, 마지막까지 전한 나의 진심을 듣고는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치 자신도 그동안 그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크로셀, 너의 진심은 잘 들었다. ...그렇게나 나를 믿어주었는데, 내가 그 믿음을 또다시 배신할 수 없지."
"...주인님..."
그 말을 듣자마자 묘하게 마음 속에서 기쁨이 올라오면서도 동시에 벅차오르는 기쁨의 눈물이 나올 것만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렇게 고민한 결실을 맺은 느낌이 들어서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며 주인님은 가볍게 끌어안아주곤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앞으로 크로셀 그대는, ...이 죽음의 곁에서 영원히 함께할 생명이다."
"저야말로, 어떤 고난과 역경이 기다린다고 하더라도... 이 끈질긴 생명은 언제나 죽음의 곁에 있겠습니다."
"만약 그 생명이 꺼진다고 하더라도, 이 죽음의 권능으로 그대를 다시 살려낼지어니."
"다시 눈을 뜨게 되는 그 날에도, 주인님을 찬양하겠습니다."
그렇게 서로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확인하곤, 무언가 생각하듯 잠시 다른 곳을 바라보더니 다시 나를 바라보곤 이야기를 꺼냈다.
"보통 이런 고백을 하면... 어린 양은 결혼 의식을 열던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나?"
"결혼... 말씀이십니까...!?"
물론 멀리서 본인도 그런 의식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고, 다른 추종자가 어린 양과 결혼을 할 때의 상황을 눈앞에서 본 적도 있었지만... 내가 주인님과 결혼 의식의 주인공이 되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으니 굉장히 낯설면서도... 한편으로는 기쁠 것 같았다.
"주인님과 결혼을 할 수 있다면... 저야말로, 기쁠 것입니다..."
"...크크, 그래. 나도 저 어리석은 양과 억지로 결혼하는 것보단 이렇게 너와 결혼하는 게 더 낫기도 하니."
"그러면... 교주님에게, 한 번 이야기를 드려볼까요...?"
"좋다. 이번에는 함께 가지."
주인님과 함께, 교주님 앞으로 다가갔고 교주님은 우리들을 보며 웃어보이곤 무엇을 말하러 왔는지 궁금하다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 모습에 주인님과 함께 말을 꺼냈다.
"주인님과, 결혼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의식을 열어주실 수 있을까요?"
"보다시피 내 추종자가 얘기한 대로다. 부탁할 수 있겠나, 어린 양이여."
교주님은 저희들을 유심히 둘러보곤 잘 됐다며, 앞으로도 행복하라는 듯 박수를 가볍게 쳐 주곤 사원으로 가서 모두를 불러모아 의식을 진행했다. 아무래도 갑작스럽게 진행된 의식이니만큼 특별한 복장을 준비하진 못했지만, 그저 이 곳에서 주인님과 함께 의식을 진행할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기쁘고 행복했다.
모두의 축하(라고 믿고 있다)를 받으며 주인님을 바라보곤, 다시 이 곳에서 맹세를 했다.
"저의 모든 것을, 제 눈 앞에 있는 죽음에게."
"나의 모든 것을, 이 생명을 위해."
겉으로는 짧고 간단한 한 마디. 하지만 그 안에는, 무엇보다도 길고 깊은 뜻이 담겨있을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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