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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tL

[Cult of the Lamb / 크로셀] 221110

 

 

 

 


 

 

 

화창한 봄날. 모두가 잠에서 깨어나 일과를 시작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오늘은 무슨 일을 해야될 지, 고민하고 있던 그 때... 어떤 추종자분께서 저에게 다가와서는 좋은 하루라며 말을 꺼내주시네요.

 

 

"___님~ 오늘도 좋은 하루입니다~!"

 

 

...분명 저를 보면서 말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어째서인지 이름이 제대로 들리지 않네요. 분명 제대로 듣고 있는데, 잠이 덜 깬 것도 아닌데... 이름 부분만은 확실하게 들리지 않고 마치 노이즈가 낀 것마냥 소음만이 들릴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으니 그 추종자 분께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저에게 말을 꺼내는 모습을 보였죠.

 

 

"흐음? ___님~? ___님~!"

 

 

계속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오히려 더 이상하게 보일 것 같아서, 그럭저럭 반응을 해 주는 것으로 대답했습니다.

 

 

"...아, 네... 잠이 조금 덜 깨서... 꿈 속에서 들리는 소리인 줄 알았습니다."

"에이, 그런 거였어요? 난 또 ___님이 어디 아프신가, 라며 걱정했다구요~"

"아하하, 죄송합니다. 원래 아침엔 다 그런 법이지 않겠습니까?"

"물론이죠~ 저도 다 이해하고 있어요! 아, 맞다! 지도자님께서 부르셨어요! 한 번 찾아가보시는 게 어떨까요?"

"아, 주인님께서 부르셨습니까. 얼른 가봐야겠네요."

 

 

주인님이 머무르는 사원. 언제나 이 사원 근처를 지나가면 압도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묘하게 부드러운 분위기가 느껴지곤 했습니다. 주인님이 다루는 '죽음'이라는 건, 이런 느낌인가? 싶은 생각을 가지게 만들곤 했죠. 일반적인 '죽음'이라는 것과는 다른 것인가? 라고 생각하게 만들기도 했고요.

그런 생각을 하며 사원 안으로 들어서자, 주인님은 저를 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라는 말과 함께 가볍게 고개를 숙여 내려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주인님의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기도를 올렸죠.

 

 

"생명이 다시 눈을 뜨기 시작하는군."

"어느새 꽃들도 다시 아름답게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그런 의미에서, 네가 나의 설교를 도와 주어야겠다."

"...네? 제가... 주인님의 설교를...?"

"다른 녀석들에 비해 너의 표현력은, 언제나 나를 만족스럽게 했으니."

"제가 주인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습니다...!"

 

 

따스한 봄날의, 따스한 온기와도 같은 기억이네요.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어느 여름날. 다른 추종자 분들은 잔뜩 녹초가 되어서는 그늘에서 오랫동안 쉬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사실 저도 그늘 속에서 다른 추종자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휴식을 취하고 있기는 했지만요.

 

 

"후우, 이렇게 더워서야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언제쯤이면 기온이 내려갈지 의문입니다..."

"아마 당분간은 계속 이렇게 더울 것이라는데, 잘 버텨낼 수 있을까요-..."

"분명 주인님께서 좋은 방법을 알려주실 겁니다. 그때까지, 조금 기다려보죠."

 

 

주인님은 사원에서 꽤 오랜 시간을 고민하고 있다가 다른 추종자들을 사원으로 불러 하나로 모았습니다. 벌써 설교 시간이 되었구나, 싶은 생각과 함께 사원으로 들어갔을 땐... 꽤나 주인님도 편안한 자세로 저희들을 맞이하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보통 설교를 할 때에는 꽤 위엄있는 모습을 유지하는데 그런 모습이 아니라서 저 이외의 다른 추종자 분들도 꽤나 의아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죠.

그런 모습을 잠깐 즐기듯 싱긋 웃는 주인님은, 곧 말을 꺼냈습니다.

 

 

"너희들이 더운 날씨에 쓰러져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 오늘은, 모두가 평온하게 쉴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주인님은 하루동안 모두가 일을 하지 않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의식을 열었고, 다른 추종자 분들이 대표로 나가서 의식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추종자 분들의 환호 속에서 의식은 종료되었고 다들 편안한 복장으로 갈아입는 모습을 보며 저는 근처에 있는 그늘에서 다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 주인님께서 이 곳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죠.

 

 

"옷은, 갈아입지 않아도 되는 것이냐?"

"저는 이 옷이 가장 편하니 괜찮습니다."

"그러면 다행이군. 오랜만에 쉬는 기분은 어떤가, 크로셀?"

"역시 휴식은 중요하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주인님도 편하게 쉬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래야지. 요즘 복잡한 일이 많더군."

 

 

모두가 편히 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무더운 여름날의 기억이었습니다.

 

 


 

 

생명이 다시 눈을 뜨기 시작하는 계절이 봄이라면, 조금씩 다시 눈을 감기 시작하는 계절은 가을이라고 할 수 있겠죠. 교단의 나무에 잔뜩 달려있었던 나뭇잎들이 붉게 물들며 바닥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를 감성이 느껴지는 것 같으면서도, 저걸 언제 다 하나로 쓸어모을지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그래도 혼자 낙엽을 쓸어담는 건 아니니까 괜찮겠죠.

아마 저 말고 이미 다른 추종자 분들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으휴, 낙엽을 하나로 모았는데 또 떨어지고 있어요..."

"아하하...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이제 얼마 안 남은 게 눈에 보이긴 합니다."

"그렇긴 하죠? 조금만 더 힘내볼까요...!"

 

 

그러고보니 방금, 낙엽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를 감성이 느껴진다고 제가 말했었죠? 뭐랄까... 그동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다가 가을이 되니 이제 자신의 역할은 끝났다는 듯 자연스럽게 나무에서 떨어져 바닥으로 내려온다는 점이... 참 여러가지 생각을 들게 만들곤 합니다. 저희들도 언젠가 저런 낙엽처럼, 주인님을 위한 일을 충분히 완료했다고 생각하며 주인님이 있는 이 교단을 떠나거나, 아니면 주인님을 위해 마지막으로 제물이 되거나... 그런 존재가 되는 게 아닐까요?

어쩌면 저희들이나 이 낙엽이나... 비슷한 역할이자 처지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이런저런 망상과 잡념에 빠져있던 중, 낙엽을 모으고 있던 추종자 분께서 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___님~!"

"...네? 무슨 일이십니까?"

"별 건 아니고, 낙엽이 엄청 많이 쌓였어요~"

"아아-..."

 

 

확실히 낙엽이 엄청 많이 쌓이긴 했네요. 그런 낙엽을 멍하니 보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어떤 추종자 분이 품에 한가득 무언가를 끌어안고 이 낙엽이 있는 쪽으로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가까이 다가오면서 그 품에 있는 것을 자세히 볼 수 있었는데... 고구마네요?

 

 

"이 낙엽... 쓸 일 없죠?"

"네! 청소하려고 모아둔 것이랍니다!"

"그러면... 우리, 여기에 고구마 구워먹을까요?"

"오, 좋죠! ___님도 와서 같이 먹어요!"

"알겠습니다. 맛있겠네요."

 

 

잔뜩 쌓인 낙엽과 고구마라는 소리를 듣곤 주변에 있던 다른 추종자 분들도 잔뜩 몰려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무래도, 자연스럽게 만찬의 현장이 된 것 같군요.

이런 걸 보면 역시 가을은... 은근히 낭만을 즐기기 좋은 계절인 것 같습니다.

 

 


 

 

하얀 눈이 내리고, 어느새 바닥에는 눈이 어느정도 쌓여있는 게 보일 정도였습니다. 겨울이라곤 해도 눈이라는 걸 쉽게 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아쉬움을 달래주기라도 하듯 눈이 쌓여가는군요. 적당히 거주지 주변을 꾸준히 청소하면서 잠이 들 때에는 걱정없이 잠들 수 있도록 정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정리를 하며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추종자 분들께서는 쌓여있는 눈으로 이미 즐겁게 놀이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군요.

저도 그렇게 놀이에 끼어드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오늘은 가볍게 눈 속에서 명상을 즐기고 싶습니다. 눈이 내리는 날은 평소보다 더 고요한 기분이 들어서 명상을 즐기기에 좋더라구요. 조용히 다른 추종자 분들이 쉽게 드나들지 않는 구석에서 눈밭에 가볍게 앉으며 명상을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쌓여왔던 잡념들이나 걱정같은 것들을 잠시 내려두고, 무의식 속에 자신을 맡기는 시간을 가지는 건 꽤나 저에겐 재미있고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평소에 쌓여있던 생각들을 내려두는 시간도 종종 필요한 법이니까요. 아무리 '생각'이라는 것이 추상적이라고 해도 결국 이런 것들이 쌓이고 쌓이면 온몸이 무거워져서 그대로 잠겨버리는 상황도 생기기도 하니, 생각을 내려두는 것도 의외로 중요한 과정이랍니다.

 

 

그렇게 명상을 하고 있던 중, 누군가가 다가와서는 가볍게 제 옆에 앉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눈을 가볍게 떠서 옆을 바라보니, 주인님께서 제 옆에 앉아있는 것이 보여서 솔직히 순간 놀랐습니다...

 

 

"...주인님...!?"

"할 일을 하거라. 나도 분위기를 즐기러 온 것이니."

"아, 네... 알겠습니다..."

 

 

물론 주인님이 옆에 온 순간부터 이미 명상과는 거리가 멀어졌지만, 그저 주인님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따뜻하고... 잡념들과 생각들이 다 녹아내리는 것 같아서 명상과 비슷한 효과가 생기니 좋았습니다. 주인님은 그런 제 모습을 보며 웃음짓곤 말을 꺼냈습니다.

 

 

"크로셀. 너는, 이렇게 혼자 있는 시간이 많더군."

"누군가와 어울리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혼자 명상을 즐긴다던지... 그런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아하니까요."

"그럴 수 있지. 누군가와 어울리는 건 언제든 가능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건 쉽지 않으니."

"가끔씩 다른 추종자 분들께서 온다던지... 그런 일이 많긴 했으니..."

"그래서, 오늘의 명상은 충분했나?"

"물론입니다. 더욱 가벼워진 기분입니다."

"다행이군. 그러면, 잠깐 같이 갈 곳이 있는데... 같이 가겠나?"

"...음? 어디로 가는 겁니까?"

"그건..."

 

 

분명 주인님께서 무언가 말을 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지만... 정작 그 말이 무엇이었는지 제대로 들리지가 않습니다. 마치 제 이름을 부르던 추종자 분들에게서 제 이름만은 제대로 들리지 않았던 것처럼... 아무리 들어도 들리지 않아서 다시 주인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주인님, 죄송하지만... 혹시 다시 한 번 말해주실 수..."

 

 

주인님에게 말을 꺼내는 순간, 마치 조금씩 녹기 시작하는 눈처럼 주인님을 비롯한, 다른 추종자 분들도... 이 교단의 모습들도... 조금씩 녹아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이 상황을 비유하자면, 그동안 제가 보았던 것들이 안개나 신기루같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렇겠죠. 이것들도 전부, 실제로 제가 보고 있는 것이 아닌, 그저 꿈 속에서의 추억일 뿐이니까요.

꿈이라는 건, 결국 언젠가는 깨어나기 마련인 법이니.

 

 


 

 

"... ___형~"

 

 

비몽사몽한 모습으로 눈을 뜨자 어느새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었고, 다른 추종자 분들도 거주지에서 일어나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제 눈 앞에는...

리온이 있네요.

이제는,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마주하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로셀 형~ 들려~?"

"...네, 잘... 들립니다..."

"들리긴 해도 잠은 덜 깼네~ 그럴 수 있지!"

 

 

...근데 생각해보니 리온은 잠을 안 잔 걸까요? 아니면 저보다 일찍 깨어났는데도 컨디션이 벌써부터 좋은 걸까요... 솔직히 리온의 컨디션에 대해서 늘 의문이 들 정도로 궁금한 부분이 많기는 한데... 한편으로는 그런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뭔지 나중에 물어보고 싶을 정도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물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요.

아무튼 정신을 차리고 리온을 바라보니 리온의 품 속에 무언가가 잔뜩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마치 저를 위해 준비한 것처럼 보이는데... 아무리 봐도...

 

 

"그건..."

"아, 봤구나? 로셀 형이 생각나서 성전에서 잔뜩 챙겨왔어!"

 

 

자주색의 안개꽃. 확실히 리온의 말대로 제가 떠오를 법한 색깔이긴 하네요. 그나저나 제가 성전에 갔을 땐 이런 걸 본 적이 없었는데... 역시 성전의 모든 것을 다 청소하는 리온답게 어딘가에 숨어있는 것까지 다 찾아낸 모양입니다.

 

 

"안개꽃이네요. 그것도... 자주색의..."

"완전 로셀 형이랑 비슷한 색깔이지?"

"그래서 그런지 더 마음에 드는 것 같습니다."

"히히, 다행이네! 얼른 받아~"

 

 

리온에게서 받은 자주색 안개꽃을 조심스럽게 받아들곤, 그 안개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거주지 한 곳에 소중히 보관해 두었습니다. 아무래도 적당한 크기의 화분이라던지, 아니면 꽃을 보관할 무언가를 찾아야겠네요. 리온은 제가 꽃을 받아드는 모습을 보자마자 "그럼 난 청소하러 간다!" 라며 바로 성전으로 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원래는 저에게 이 꽃을 주자마자 바로 성전으로 가려고 했는데 제가 늦게 깨는 바람에 깨어날 때까지 안개꽃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요? 왠지 미안해지는 마음이 들기도 하네요...

 

마치 안개처럼 사라져버린 꿈을 뒤로 한 채, 지금의 삶을 다시 살아갈 준비를 해야겠죠?

오늘은 어떤 일들이 저희들을 기다리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