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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tL

[단탈리온 > 공백] 230703

 

 


 

요즘 왜이렇게 바쁜지 모르겠다!

주인님께서 그만큼 우리들한테 시켜야 될 일이 잔뜩 밀려있는 거겠지!

그걸 미리미리 해결하지 못한 나랑 로셀 형 잘못일 거고!

 

으아아아아

 

 

···아무튼! 이 편지를 제대로 읽고 있다면 무사히 잘 전달되었다는 뜻이겠지!

얼른 대장 보러 가고 싶은데~ 이번엔 주인님께서 내려준 임무가 의외로 단순한 게 아니라서 바로 갈 수 없는 게 너무 아쉬워.

그래도 대장이라면 늘 인내심이 굉장했으니까, 이번에도 잘 참고 기다려주겠지. (헤헤.)

 

 


 

 

무언가를 위해서 자신의 욕망을 참아내고 끝까지 지켜낸다는 건 참 신기하고, 존경스럽다고 생각해.

 

 

그만큼 내가 하나에 계속 머무르지 못하고 자꾸 이곳저곳 움직이는 걸 선호하는 본능이 계속 묻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한편으론 대장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나도 대장의 곁에서 계속해서 머무르며 대장을 지키게 될 테니까, 이런 점에서는 나름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며 생기는 좋은 발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비록 과거에는 그렇게 끝까지 지켜내는 과정이 온전히 순수하지만은 않았던,

양날의 검을 모두 드러내며 지켜낸, 뒤틀린 맹목적인 사랑이었다면···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실한 마음으로, 온전히 순수하게, 대장의 주인이 그랬던 것처럼···

약자를 괴롭히는 강자들에게 그 칼날을 드러내면서 좀 더 선한 존재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계를 만들게 되겠지.

 

 

그리고 나는 그런 대장과 함께하며 이교도 녀석들을 같이 썰어버리는 청소부가 되어줄 것이고.

 

 


 

 

나도 다른 성전들을 많이 둘러본 건 아니지만, 충분히 대장에게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들이 각 성전마다 기다리고 있기도 하고··· 그 풍경을 대장과 함께 둘러볼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해.

 

 

먼저 다크우드의 경우에는, 동백꽃이 잔뜩 피어있는 울창한 숲의 분위기를 풍기곤 하지.

생각해보면 동백꽃이라는 건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누군가를 위해 치료해주는 약재처럼 사용되곤 하는 것이 정말 다양한 방면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 마음에 드는 자원이랄까.

아마 그렇게 누군가를 치료해줄 수 있는 것도, 그동안 많은 존재들이 흘린 피가 동백꽃에 스며들어서 그 존재들의 헌신이 우리들을 치료해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저번에 대장 앞에서 말했던··· 그런 혼자만의 망상처럼 말이야.

 

 

아누라는 마치 노을이 지고 있는 것 같은 주황빛이 내리쬐고 있는 것이 인상적인 장소야.

물론 거기서 자주 발견되는 버섯은 함부로 막 먹으면 아무리 대장이라고 하더라도 큰일날지도 모른다구? 보통은 누군가를 세뇌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된다고 하니까 말이야.

하지만 그렇게 다른 것마저 잊게 만들고 오직 무언가를 세뇌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한 효과를 발휘한다면··· 아주 오래 전에는 전쟁의 피해자들에게 써먹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앵커딥은 대장도 자주 드나들었을 테니까 알 수도 있겠지만, 물 속에 있는 듯한 분위기가 인상적인 장소였지.

그러고보니 내심 궁금한 게 있어. 어떤 계기로 앵커딥의 깊숙한 곳에 주인의 무덤을 만들게 된 거야? 그만큼 대장도 앵커딥의 분위기를 이전부터 좋아했던 걸까? 아니면 앵커딥에서 만들어지는 아름다운 수정들을 보면서 주인에게 선물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던 건가?

어떤 쪽이든··· 분명 대장의 주인도 엄청 좋아할 것이라는 건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네.

···아! 나중에 수정을 모아서 거주지를 꾸밀 장식으로 쓰거나, 대장의 주인에게 선물로 줄 수 있을만한 것들을 생각해서 같이 만들어보는 건 어때? 분명 대장의 주인도 엄청나게 좋아할 거야.

물론 내 손재주가 엄청 좋은 건 아니지만- 뭐든지 일단은 정성이 들어갔다는 것이 보이면 좋긴 하잖아? (히히.)

 

 

비단요람도 일단 분위기 자체는 나쁘지 않아. 보랏빛 풍경도 나름 특이하고 인상적인 느낌이잖아?

단단한 거미줄들이 길을 가로막곤 하지만, 한편으론 그런 거미줄들을 보고 있으면 지금까지 어떻게든 살아왔다는 거미들의 악착같음이 느껴지기도 하지. 우리는 그런 악착같음을 몸으로 직접 느끼면서 그들의 의지를 나름대로 이어갈만한 이유가 되기도 하고 말이야.

특히나 대장도 그렇게 악착같이 살아왔고, 주인을 끝까지 악착같이 섬겨왔으니··· 생각보다 비단요람의 풍경과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

그리고 비단요람에서 얻을 수 있는 명주들은 나중에 옷을 다듬거나 할 때 꽤나 쓸모가 많을지도 모르니까, 여기서도 풍경을 구경하다가 명주를 좀 챙겨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계획일 것 같아!

 

 


 

 

이렇게 다른 곳들의 풍경에 대해 강조하면서 보여주고 싶다고 하는 것도···

조금이나마 내가 겪어왔던 것들을 같이 함께 나누며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이겠지.

 

 

대장도 알다시피, 나는 언젠가 이 세계를 떠나게 될 단순한 필멸자일 뿐이고···

그렇게 이 세계를 떠나게 되더라도, 다른 세계에서도 언제나 대장을 지켜보며 그 때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삶을 즐기고 싶으니까.

그리고 그건··· 앞으로도 더 오랜 시간을 살아가게 될 대장에게도 같은 마음이길 바라고 있으니까.

 

 

이런 것들에 비하면 그렇게 좋은 풍경이라곤 말할 수 없긴 하겠지만,

오래 전 신들의 전쟁이 벌어지던 시기에는 좀 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들어보고 싶어.

 

 

그래야 나도 더 많이 발전할 수 있을 테니까.

대장도··· 이해하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좀 주절거리게 된 것 같지만, 결론적으로 이런 이야기들을 꺼내게 된 것도···

전부 대장을 좋아하고, 사랑하니까 꺼낼 수 있는 거겠지.

 

 

나는 대장이 정말 소중하고, 정말 좋고···

대장을 정말 사랑한단 말이야. (헤헷.)

 

 

대장도 그만큼 많은 것들을 잃으며 지금까지 버티며 살아왔고,

나도 대장만큼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많은 것들을 잃은 채로 지금까지 버티며 살아왔으니까···

 

 

그런 것들을 조금이라도 채워주고 싶어서,

그런 것들을 채워가면서 생길 다양한 추억들을 더 많이 불어넣어주고 싶어서···

 

 

오래 전, 대장이 주인을 섬기면서 쌓였을 그런 즐거웠던 추억들처럼 앞으로 더 즐거울 일들을 잔뜩 새겨주고 싶다고, 나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다짐했는걸.

항상 타인을 돕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만, 그게 더 진심이었던 적은 지금 말고는 없었을지도.

 

 

이런 관심이 조금 낯설고 어색하고 부끄러울 수도 있겠지만-

서로에 대한 진심을 더 많이 알아가면, 그건 그거대로 좋은 일이 될 테니까!

 

 


 

 

잠깐 이렇게 떨어져있는 시간이 벌써부터 나에겐 너무나 고통스러워~

 

 

얼른 임무 완료하고 복귀할 테니까, 그 때까지 대장도 어떻게든 잘 참고 기다려줬으면 좋겠어!

나머지 이야기들은, 교단에서- 그리고 우리 거주지에서 천천히 하는 걸로 하자!

 

 

그럼, 다시 임무를 완료하러 갈게!

 

 

- 대장을 섬기는,

대장을 깨우는 자,

단탈리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