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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로로/자캐

[자캐 - 바루스 / 엘레멘트] blood-ti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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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하는 것도 없는데, 요즘따라 많이 피곤함을 느낀다. 뭐- 사실 글라시아를 챙겨주느라 본인의 건강에 조금 소홀해진 것 같은 느낌도 없진 않은데, 아무래도 내 건강도 생각하며 글라시아를 챙겨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일단은 기분을 좀 전환할 겸 먹을거리를 잔뜩 사서 글라시아와 함께 나눠 먹으려고 길을 걸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최근 남들이 자주 다니지 않는 길목으로 다니는 일이 많기 때문에, 위험할 수도 있긴 하겠지만 그래도 이 쪽으로 다녀야 왠지 마음이 조금 놓이는 기분이 들곤 했다. 혹시라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으로 갔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길지 모르니까. 

너무 쓸데없이 걱정이 많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예전부터 조금씩 달라지려고 노력을 해도 쉽게 변하지가 않는다. 언제쯤 마음놓고 그런 길로 갈 수 있을까?


오늘따라 뭔가 이 길목에서 묘한 기분이 느껴진다. 마치 나 혼자 있는 게 아닌, 누군가가 지금 이 길목에 존재하는 듯한 그런 기분. 

조금 더 걸어가니, 예상대로 누군가가 계속 걸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뭔가 정상적인 그런 상태는 아닌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조금 다가가본다.


마치 피를 뒤집어 쓴 듯 온몸에 피범벅이 된 어떤 존재였는데, 초면인 건 아무래도 좋다는 듯 그에게 다가가 잠시 그를 멈춰 세운다. 

어둠 속에서 붉게 빛나는 눈, 마치 위장이라도 한 듯한 진한 초록빛과 검은 줄... 무슨 일이 있었길래 온통 피투성이가 된 상태로 돌아다니고 있는 것일까...


"...무슨 일이 있었길래 온통 피범벅이 된 거야..."

"흠, 말하기엔 좀 그런 사정이 있지."


그가 말을 꺼냈을 때, 나는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존재, 나를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솔직히 내 손등의 칼날을 생각해 보면 어쩔 수 없이 경계를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절대로 당신을 해칠 생각이 없다」 라는 것이 느껴지도록 최대한 상냥하게 (라고는 해도 본능적으로 말투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변한다.) 그를 대해준다.


"다친 곳은 없어...?"

"자네가 보다시피 다친 곳은 없다네."

"그럼 다행이네... 잠시만 가만히 있어 줘..."

"...흠."


"...그나저나 왠지 지금 이 이야기를 쓰게 될 누군가가 떠오르는 옷과 겉모습인걸..."

"너무 작아서 못 들었는데, 방금 자네가 한 말이 무엇이었는지 들을 수 있겠나?"

"아, 아냐... 그냥 혼잣말이었어..."


그에게 묻어있는 피를 닦아낸다. 완전히 피가 지워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아예 닦아내지 않은 상태보다는 조금 나아진 것이 눈에 보였다. 

묻어있는 피들을 완전히 닦아 내 주고 싶지만, 옷에 묻어있는 피라던가 그런 것은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둘 수밖에 없었다.


"옷에 묻은 피는... 잘 안 지워질 텐데..."

"이런 건 내가 알아서 하니 걱정하지 말게. 그나저나 자네, 재미있는 녀석이군."

"응...? 재미...있다니...?"

"피 묻히는 걸 좋아할 것 같은데 이런 걸 걱정해주고 있으니."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하지만, 무작정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건 방심으로 이어질 수도 있어..."

"허허, 자네, 지금 나를 가르치고 있는겐가?"

"그런 건 아니지만... 그렇게 들렸다면 미안해..."


반쯤 감은 눈으로 바라보며 꺼내는 무미건조한 말투. 이렇게 피를 닦아주고 그랬지만 이 존재는 아직도 나를 경계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남들에게 마음을 그렇게 쉽게 열지는 않는 듯한 모습이었는데, 그런 모습에서 왠지 모를 동질감같은 것이 느껴졌다. 나도, 초면에 대놓고 내 모든 걸 열어놓진 않으니까.


"그나저나... 초면이라 그런지, 경계하고 있구나..."

"그걸 눈치채는 걸 보니, 자네도 꽤 경계심이 많은가 보군."

"응. 많아. 하지만, 지금처럼 피범벅이 된 존재를 만나면, 경계심이 사라져..."

"...어째서지?"

"혹시라도 가만히 두었다간, 쓰러져 죽을 것 같아서..."


과거에, 지금처럼 긴 손등의 칼날을 처음으로 가지게 되었을 때, 이게 얼마나 날카로운 것인지 모르고 장난을 치고 싶어서 이리저리 휘두른 적이 있었다. 

내 주변에는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던 존재들이 많았는데, 내가 휘두른 칼날 때문에 다들 큰 부상을 입고, 영원히 깨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만약 피범벅인 사람을 보게 되면 일단은 먼저 다가가서 피를 닦는다던가, 치료를 해준다던가 하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초면인 존재에게 경계하는 이유도, 어쩌면 내 칼날에 의해 또 다치게 하는 건 아닌지에 대한 걱정이 담겨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런 일이 있어서."

"겉과는 달리 자네, 꽤 불운한 기억을 가지고 있군."

"그래서... 방금 피를 닦아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어..."

"갑자기 받게 된 도움이지만, 일단은 고맙다고 해 두지."

"다음에 만날 일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 땐 피범벅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젠 내 주변에서 누군가가 사라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항상 같이 있으면, 얼마나 좋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