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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로로/커뮤

[자캐 - 엘리시온 / 테루] Grim ~Story of the Demonic scythe~





혼자서 조용히 공원의 벤치에 앉아 낫을 꺼내 이리저리 다듬고 있었습니다. 주변에서 이상한 시선으로 저를 바라보곤 했지만, 낫을 보곤 역으로 겁먹었는지 빠르게 도망가는 것도 보였습니다. 뭐, 저는 전혀 해칠 생각이 없지만 말이죠-...

그러다 저 멀리 익숙한 얼굴이 지나가는 게 보였습니다. 딱히 손에 들고 있는 게 없는 걸 보니, 산책이라도 하러 나온 걸까요? 조심스럽게 지나가려는 방향을 바라보며 조금은 큰 소리로 외쳐보았습니다.


"어딜 그렇게 가시는지요-?"

"아, 엘리시온 형...!"

"산책 나오셨습니까?"

"네...! 오늘은 혼자 나왔어요."

"항상 누군가와 같이 있는 모습만 봐서, 이렇게 보니 조금은 낯설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고보니 옵시디언 형이 없네요?"

"...예, 뭐... 바쁠 시기입니다."

"옵시디언 형도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나중에 다시 시간을 만들면 되는 일이니, 너무 실망하진 마십시오."


그렇게 앉아 있었는데, 저의 모습을 보며 살짝 궁금했는지 계속해서 절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저보단 지금 저의 낫을 다듬는 모습에 더 호기심이 많겠죠. 이런 거,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니까 말입니다.


"그나저나 그 낫은, 언제봐도 참 무섭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아, 이 낫 말씀이십니까..."

"그렇게 큰 걸 들고 다니면, 무겁지 않아요...?"

"이상하게도 저희들은 이 낫이 엄청 가볍게 느껴집니다. 정작 다른 분들이 이 낫을 들으려고 하면 절대 못 들지만요..."

"...정말요?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한거지..."

"저희도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낫에게 선택받은 것일지도 모르죠."

"혹시 낫에 이름같은 게 있다던가 그런 건 아니겠죠...?"

"...있긴 있습니다. 사용을 잘 안 할 뿐..."

"어떤 이름이예요?"

"제 낫에는 그림(Grim), 옵시디언의 낫에는 리프(Reap)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옵시디언 형의 낫에도...?"

"왜냐하면 제 낫과 옵시디언의 낫은 원래의 주인이 있는 낫이었는데, 그 주인이 같은 분이라서 그렇습니다."

"...!?"


「뭐...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런 과정이 있었습니다.」



《아주 옛날, 그 당시에는 제가 연구소장이 아닌 인공 생명체로서의 임무를 수행할 당시였습니다. 그래서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어떤 분께서 (지금 말한 원래의 낫 주인을 말합니다.) 저를 보시곤 잠시 자신을 따라오라고 하시더군요.

그를 따라가서 본 건, 지금의 제 낫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그 낫을 들어서 저에게 넘겨주시더군요. 그러곤 저에게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절대로 함부로 사용하지 말고, 자신이 지키고 싶은 것에만 사용해라.』 라고 말이죠.


그래서 실제로 임무를 수행할 당시에도 이 낫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사용했던 건 이 낫과 모양만 완전히 똑같은 일종의 복제품이었죠. 아무래도 무기가 없는 것보단 무언가 있는 게 더 편하긴 하니까요...

여담이지만 옵시디언도 낫을 받았을 때 저와 똑같이 자신이 지키고 싶은 것에만 사용해라- 라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이 낫은 무기이면서도,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는 소중한 물건이기도 합니다.》




"아아-..."

"...그나저나 이 이야기를 꺼내려고 한 게 아니었는데..."

"그러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었는데요...?"

"그냥, 잘 지내고 있으셨는지, 아프신 곳은 없으신지... 그런 걸 물어보려고 했었습니다."

"잘 지내고 있어요! ...잘 지내고 있는건가? 싶을 때도 있지만..."

"그러면 다행입니다... 항상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면 꼭 어디 아픈 부분이라도 생기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서곤 합니다."

"아, 아니예요... 정말 괜찮은데..."


-


"그나저나... 낫을 다듬고 있다는 건, 지금까지 사용한 경우가 별로 없어서예요?"

"...뭐,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물론, 별로 없을 뿐이지 아예 안 쓴 건 아닙니다."

"그렇다는 건 소중한 존재가 있다는 뜻이겠네요...!"

"물론입니다. 지금 제 눈 앞에도 한 명 있군요."

"혹시... 저...?"


고개를 끄덕이며 싱긋 웃어주었습니다. 

말 대신 나름대로 긍정의 표현을 보인 것이지요.


"...사실 항상 고맙죠. 그러면서 좀 민폐 끼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아닙니다. 여러모로 테루가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됩니다."

"도움...이요...?"

"저는 아시다시피 인공 생명체입니다. 그래서 성장 과정같은 게 없었죠. 그런 과정을 지켜볼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많았는데, 그 과정을 테루를 통해 관찰하고 있습니다."

"정말요?"

"그래서 참 제가 신세 많이 지고 있습니다."

"신세는... 제가 지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자꾸 부정적으로 생각하시면 혼낼 겁니다-? 하핫."


신세를 지고 있다- 라는 말을 하면서 문득 테루를 알게 된 것도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처음엔 제 몸이 좀 말썽이라서 온갖 속을 다 썩혔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이 흑역사는 도저히 사라질 생각을 하질 않는군요...


"지금 생각해도, 그 때의 제 행동이 정말... 으으..."

"아, 아니예요... 그 때 정말 엄청 걱정했었다구요..."

"...다음엔 절대 그런 이상한 행동 안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엘리시온 형..."

"그런 의미에서 이제 새로운 해를 맞이할 시기가 왔습니다만, 항상 함께 해 주실 거라고 약속해 주시겠습니까?"

"물론이죠...! 옵시디언 형도 함께...!"

"이 영원의 불사조, 엘리시온... 끝까지 테루를 지켜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테루.

비록 다른 존재들에 비해 알고 있는 지식이 좀 부족한 인공 생명체이지만, 그래도 영원의 불사조라는 이름을 걸고... 부끄럽지는 않게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