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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로로/커뮤

[자캐 - 플루토 / 옵시디언] opportunity





사실, 생각해보면… 

나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아직까지도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원래 의뢰를 안 받으려고 했는데, 정말 급한 의뢰가 있다고 그 의뢰를 부탁할만한 게 나밖에 없다고 해서… 지금까지 많이 의뢰를 부탁한 분이기도 해서 한 번은 일종의 보너스같은 느낌으로 의뢰를 받아 주었다. 오랫동안 이런 활동을 안 하긴 했지만, 적어도 예전 그 느낌은 여전하겠지- 라는 느낌도 있었고.

그런데 예상과는 다르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고작 한 달동안 의뢰를 안 받았는데 몸이 이렇게나 굳었단 말이야? 그래서 온통 상처투성이 상태로 의뢰를 끝마쳤다. 의뢰인도 그런 내 모습을 보곤 괜히 의뢰를 신청한 것 같다며 굉장히 미안해하는 모습이었는데, 너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며 의뢰 비용을 받고 돌아오는 길이다.


그나저나, 돌아가는 길에 하늘을 바라봤는데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다. 이제 슬슬 햇빛 좀 보나- 싶었는데 이번에도 비가 오려나보네.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잔뜩 내리기 시작해서 잠시 몸을 피하긴 했지만, 계속 이렇게 기다리기도 뭣하니… 그냥 비 맞으면서 가지, 뭐…

사실 비 맞으면서 다니는 걸 좋아하는 편이니까, 그저 지금 이 피투성이 상태로 빗속을 걸어다니는 게 조금은 귀찮을 뿐이었다. 주변의 눈치따윈 원래부터 신경쓰지 않는 타입이었고.


아주 옛날에도, 주변에 아무도 없이 이렇게 혼자 다니는 일이 종종 있었지. 아니, 항상 그랬었지. 도대체 그 당시의 나는 어떤 죄를 지었길래, 그런 외면을 당하고 따돌림을 당하고 그랬던 걸까. 지금 생각해도 정말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기도 싫지만… 이런 것도 다 경험이라고 할 녀석들 뿐이겠지.

이런 게 경험이라고 하는 녀석들은 분명 나보다 더 잘 살아온 녀석들일거야. 그러니까 내 마음따윈 이해도 안 하고 그냥 생각나는대로 지껄이는 녀석들인거지. 난 그런 녀석들이 마음에 안 들어서, 항상 낫으로 그런 녀석들을 베어오곤 했지. 그래서, 내 주변에 그런 이상한 참견을 하는 녀석들이 없는거야.


그런데 이런 행동들도 주변에 다 소문이 나긴 나는걸까, 더욱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어지고, 나에게 다가오려는 존재들도 없었다. 그렇기에… 어쩌면,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이유도… 아무도 나에게 다가와주지 않으니 내가 먼저 다가가야 되겠구나- 라는 생각 때문이겠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나에게 필요한… 그리고 나를 필요로 하는 존재를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과 두려움이 들어서.


아, 계속 비 맞고 있으니까 조금 따갑긴 하다. 상처투성이로 비 맞고 다닌 적은 없거든. 그래서 괜찮겠지- 했는데 막상 그렇게 괜찮지는 않네. 아니면 지금 빗줄기가 조금 강하게 내리고 있는데 그래서 그런걸까? 빗줄기가 약하다면 그렇게 아프지 않을지도 모르겠는데.

내가 지나갈 때마다 땅이 물웅덩이가 아니고 피로 웅덩이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피를 잔뜩 흘리고 있는데도 별 일 없는 나 자신도 조금 신기하기도 하고. 겉과는 달리 내가 쉽게 쓰러지진 않는 녀석인가보다. 예전부터 느끼긴 했었지만.


이렇게 내가 다친다고 해도, 주변에서 누가 날 신경써줄까? 사실 예전과 별 다를 바 없는 지금의 모습에 왠지 굳이 나는 열심히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어차피 과거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나… 별 다를 게 없다면… 그냥 이대로 변하지 않는 삶을 지내는 게 힘도 안 들이고 편하겠지. 그렇지 않을까?

변하지 않을 일들을 시간 아깝게 왜 굳이 변하려고 노력해야 되는 건데? 어차피 사람은 결국 어떻게든 끝을 맞이하게 되어 있다면, 그냥 이대로 맞이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사실… 과거에는 변하고 싶었어도 지금은 변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없진 않았다. 왜냐하면…

과거에는 불행했지만 지금은 내 곁에 있어주는 사랑스럽고, 강하고, 그 누구보다도 용감한 애인이 있으니까. 왠지 변해버리면, 이 애인도 갑자기 사라질 것 같은 그런 불안감이 들어서.


아까부터 계속 이렇게 안 좋은 생각을 하며 걷다가, 무언가에 부딪힌 듯한 느낌이 들어서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다. 이미 벽같은 거에 부딪힌 게 아니라는 걸 눈치채고 있었기에 곧바로 사과를 한다. 고개는 들지 않은 채로.


"…아, 미안합니다…"


그러자 내가 부딪힌 쪽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지더니 곧 나를 쓰다듬는 것이었다. 누구길래 나를 쓰다듬는거지…? 라는 생각이 들어서 고개를 들자, 플루토가 우산을 든 채로 와 있었던 것이었다.


"옵시디언 왜 사과한다?"

"…아, 플루토였구나…"

"옵시디언 상태가 안 좋다. 얼른 치료하는 게 좋다."

"괜찮아… 이 정도는…"

"괜찮았다면 그냥 넘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런…가…"


플루토가 곁으로 와서는 나를 부축해주려고 하자 괜찮다며 우산도 들고 있는데 부축까지 하면 불편할 거라면서 내가 직접 같이 걷겠다고 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적어도 비틀거리는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이 정도 걷는 건 문제 없다구.


"최근 옵시디언, 많이 불안해 보인다."

"…에, 아냐… 나는 항상 나인걸."

"그 모습, 예전에는 못 본 모습이었다."

"이렇게 상처 잔뜩 생겨있는 모습?"

"그렇다."

"하긴, 그 땐 그랬었지…"


예전에 비해 여러모로 약해지긴 한 것 같다. 신체적인 능력이 약해졌다기보단, 정신적으로 좀 많이 약해진 느낌.


"문득 궁금해졌어."

"어떤 것이 궁금하나?"

"이렇게 계속 약해지면, 플루토를 내가 지켜줄 수 있을까…?"

"…"


플루토는 그 말을 듣자 자신 쪽으로 강하게 끌어당겨서는 내 얼굴을 핥아주며 그렇게 말했다.


"옵시디언, 약해지고 있지 않다. 그렇게 생각이 드는 것 뿐이다."

"…그럴까?"

"항상 옵시디언 강하다. 약하지 않다."

"어쩌면, 플루토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네."


자신이 생각하는 게, 곧 자신의 힘이라고 하지 않던가. 내가 강하다고 생각하면, 그만큼 나 자신이 강한 것이고 반대로 내가 약하다고 생각하면, 그만큼 나는 계속해서 약해지는 것일테지. 플루토가 말한 건, 아마 그런 뜻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이 약하다는 생각을 떨쳐내라는 것이겠지.


"근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아서 고민이야."

"플루토가 있다!"

"…헤, 그렇지? 이 몸이 더 강해질 수 있게 언제든 도와줄 거지?"

"언제든 옵시디언 곁에 있는다!"

"플루토라도 있으니까, 믿을 존재가 있어서 다행이야…♪"


누군가를 진심으로 믿어본 건, 플루토가 처음이니까. 그리고 내가 끝까지 믿을 수 있게 플루토가 도와주니까, 의지하며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