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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젝트 헤드

[키네로메] 190201 -대학AU-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네.


절대 프로그래밍에 대한 로망같은 거 가지고 오지 마.

제발, 진짜로.

오히려 더 고통만 받을 테니까.



...뭐, 그래도 나는 자체적으로 기계니까 불편함은 없다. 오히려 기계가 기계에 관한 무언가를 배우니까 주변에서 특이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 같기는 한데, 그런 시선이 딱히 나쁘게 느껴지진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내 모습이 신기하게 느껴질 것 같아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체적으로 배워서 써먹으면 나쁠 것도 없지.



그러다 우연히, 아-주 우연히 만나게 된 존재가 한 명 있다. 정말 같은 과도 아닌 데다가, 어울릴 것 같은 그런 분위기를 풍길 것 같지도 않았는데 서로 조금씩 사랑을 나누기 시작한, 장미 신사. 지금은 마스터라고 부르고 있지만.

마스터는 내 기억으론 철학과를 다니고 있다고 했다. 정말 극과 극을 달리는 과가 아닐 수 없다. 누가 보면 ‘어떻게 문과와 이과가 이어지고 있는거지?’ 라고 생각하겠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잖아?



종종 둘 다 머리를 식힐 겸 근처 카페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잡기도 하지. 생각해보면... 프로그래밍이든 철학이든 아주 머리 싸매고 고통받기에 좋은 과인 것 같아. 참... 바쁘고 바쁜 과인 것 같기도 하고.

바쁘면 좋다고들 하는데, 글쎄... 이렇게까지 고통스럽고 바쁠 필요까진 있나. 어쨌든 오늘도 약속을 잡았다.



늘 그렇듯, 내가 먼저 가서 자리를 잡아두고, 마스터에게 연락해서 어떤 걸 주문해둘지 받아두고... 누가 보면 마스터가 나에게 그렇게 하라고 시키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런 게 아닌 정말 나의 의지로 직접 하는 것이다.

뭐, 그렇게 의심받은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그냥 내 마음이 편치 않은가보다.



“오늘도 고생이 많구려.”

“그러는 마스터야말로 머리가 아프겠는데.”

“철학이라는 게 다 그렇지 않겠나.”

“역시 심오한 세계인 것 같다니까-...”



어쩌면 이 프로그래밍보다 철학에서 더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는 세계가 펼쳐질 것 같은데. 뭔가 마스터도 크게 부정하지 않는 느낌이었고.



“그러고보니 늘 느끼는 게 있는데.”

“어떤 것인가?”

“다른 자리에서는 자신의 과에 관련된 이야기가 자주 들리곤 하는데, 우리는 아닌 것 같아.”

“푸흐, 그런가. 그렇게 느껴질 수 있겠군.”

“그만큼 얘기하기 싫을 정도로 머리 아프다는 뜻이겠지?”

“자네는 그나마 자네와 잘 어울리는 공부를 하고 있는 것 같네만.”

“잘 어울려도 머리 아픈 건 어쩔 수 없는걸.”



그래도 이렇게 열심히 배우면, 나에게도 마스터에게도 도움이 되는 어떤 무언가들을 만들어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상상을 하곤 해.

특히 이 홀로그램을 보여줄 수 있는 걸 응용한다면... 더더욱 가능성은 많겠지. 아직까지 멀고도 먼 길이긴 하지만, 걷다보면 도착은 할 테니까.



“마스터는 덩쿨로 빨아먹는 게 언제봐도 참 신기해.”

“푸흐, 식물은 다 그렇지 않겠는가.”

“하긴... 당연한 소리를 했네. 히히.”

“마치 자네의 눈이 입으로 변할 때도 나에겐 신기하게 느껴진다네.”

“그렇긴 하지. 남들에겐 없는 기능이니까.”



눈이 입으로 변하는, 물론 입으로 변해도 딱히 더 추가되는 그런 기능같은 건 없지만서도 (아니면 내가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일수도 있겠지) 적어도 완전히 쓸모없는 기능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늘 말하듯, 가능성이란 언제든 무궁무진한 것이고 잠재력이라는 것도 있으니까.


사실 과가 다른 것도 남들에겐 놀랍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동시에 생김새로써도 놀랍게 느껴진다나 뭐라나.


기계와 식물, 인공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

그들의 말을 빌리자면 ‘뭔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것의 조화’ 라고 설명하고 싶다나.



“마스터는 나랑 사귀면서 주변에서 이상하게 바라본다던지, 그런 건 없었어?”

“그런 시선이 무엇이 중요한가? 사랑을 나눌 수 있으면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네.”

“마스터도 그렇게 생각하지-? 워낙 주변에서 이상한 얘기들을 꺼내니까 정말 귀가 아플 지경이야-”

“푸흐, 귀가 있는가?”

“혹시 모르지- 어딘가에 숨어있을지.”



뭐,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내가 생각해도 어디로 듣는지 잘 모르겠지만서도 전자기기들을 보면 어디론가 듣기는 하니까, 나에게도 그런 숨겨진 부분이 있기야 하겠지.

역시 이렇게 마스터와 함께 고통받는 영역을 벗어난 자유로운 분위기의 이야기를 나누는 게 너무 기분이 좋다. 여기에서까지 그런 고통받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진 않았거든.



“후- 이렇게 마스터랑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머리가 좀 가벼워진 것 같아.”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네. 다시 무겁게 채워지겠지만...”

“그게 싫기는 한데, 뭐... 어쩔 수 없지.”



이제 다시 머리를 무겁게 채우러 가 볼까.

해야 될 일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급하지도 않은 일이다.



“먼저 가볼게.”

“과부하가 걸리지 않게 조심하게나.”

“물론. 그래야 마스터를 더 볼 수 있지.”



키득키득 웃는 모습의 눈을 지어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마스터에게 손을 흔들었다. 마스터도 같이 손을 흔들어주었다.



“다 끝나면 연락해주게나. 같이 돌아가세.”

“응.”



사실 마스터와 함께 지내고 있으니, 돌아갈 때도 같이 돌아갈 수 있다. 그것도 정말 기분이 좋고, 머리가 한결 가벼워지는 일이 된다.

머리에 무거운 것들이 잔뜩 쌓여도, 언제든 가볍게 비워버릴 수 있으니 정말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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