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다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발걸음을 옮기던 경험이 한 번쯤은 있었을 겁니다. 저는 한 번이 아닌, 이게 제 목적이자 사명인 것처럼 늘 본능이 이 곳으로 가라고 발걸음을 옮기곤 했죠. 아마 저를 이루고 있는 다양한 영혼들이 저에게 대신해서 말 대신 행동으로 저를 조종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저는 단순히 만들어지거나 태어난 존재가 아닙니다. 다양한 곳에서 제대로 된 마무리를 하지 못한, 또는 아직 이런저런 한이 잔뜩 서려있는 영혼들이 모여 만들어진 존재니까요. 그럼에도 그런 영혼들이 모여 만들어진 저는 나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 제가 생각해도 참 신기하다고 느껴지곤 합니다. 아마 '나쁜 성격들이 모여 만들어진 또다른 제가 어딘가에서 활동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종종 들곤 하는데, 언젠가 발걸음이 그 목적을 향해 움직이는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아무튼, 그렇게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늘 다양한 일을 겪게 되고, 다양한 존재들을 만나게 되기도 합니다. 대부분은 좋은 성격을 가진 분들이었지만 한편으론 성격이 좋지 않으면서도 저에게 해를 끼치거나 그러는 경우도 있었죠. 해를 끼치면 그만큼 뒷일이 귀찮아지는 것이 아니냐고 물어보는 존재도 종종 있었지만, 아무래도 제가 보통 존재는 아니다보니 그렇게 누가 해를 끼쳐도 정작 피해가 없는 경우도 있고, 오히려 나중에 그 존재에게 피해가 돌아가는 경우도 꽤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크게 신경쓰지 않지만, 저를 이루고 있는 다양한 영혼들이 그 분을 가만히 두지 않는 모양이네요. 아마 저에게 해를 끼치는 과정에서 제 몸의 영혼들이 그 존재에게 저주를 거는 모양입니다. 물론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사실 제 몸을 이루고 있는 영혼들의 생각을 읽을 수는 있지만... 굳이 그런 걸로 읽어보고 싶지는 않기도 하고요.
해를 끼친다고 하니, 제가 해를 끼친 건 아니지만 뭔가 주변에서 조금 특이한 소문이 퍼졌던 걸 우연히 들었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그 소문을 듣자하니 '무엇이든 다 삼켜버리고 사라지게 만드는 존재가 있다' 라고, 얼추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그런 소문이 아직도 제 머릿속에 남아있는 걸 보면 지금 생각해도 그 소문이 참 인상적인 모양이었던 듯 합니다.
이런 소문을 제가 그냥 가만히 넘겨버리는 성격이 아니라서, 그 소문을 퍼트린 분들을 찾아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지요. 그리고 그 소문을 퍼트리게 만든 장본인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확실히 그 분을 처음 보았을 때의 그 압도적인 느낌은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어떤 모습이었길래 그렇게 압도적이었냐고 묻는다면, 지금부터 짧게나마 설명해보도록 하죠.
확실히 당시에는... 멀리서 보고 있는데도, 그런 소문이 괜히 퍼진 게 아니구나- 하는 그런 분위기가 꽤 오랫동안 퍼졌던 게 여전히 기억 한 구석에 남아있네요. 저는 분위기에 휘말리는 그런 편은 아니었지만, 어째서인지 그 당시에는 왠지 그 분위기에 조금은 압도된 것 같기도 합니다. 아무튼 그렇게 분위기에 압도당하고 있는 동안, 그 분도 제 시선을 눈치채기라도 했는지 고개를 돌려서 제 쪽을 바라보았죠.
"뭐야? 그렇게 쳐다보고 있지 말고 갈 길 가시죵."
...음, 생각보다 말씀하시는 건 좀 귀여운 것 같기도 하네요. 겉모습과는 다른 반전의 매력... 이라고 해도 될 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갈 길 가라고 하는 말을 듣고 그냥 갈 길 가는 존재가 아니었기에 오히려 그걸 이용해서 역으로 다가갔던, 쉽게 말하자면 기회를 노렸습니다.
"그렇게 갈 길 가기엔, 꽤 잘생기셨는걸요."
누가 보기엔 마치 고백하려고 떠보는 것 같지만, 그냥 제 단순한 호기심의 표출일 뿐입니다. 글쎄요... 제가 왜 이런 식으로 호기심을 표출하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모르겠습니다만, 이렇게 해서라도 좀 인상적인 존재로 남으려는 시도라고 생각하면 그건 그거대로 납득이 되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이 분도 이걸 그냥 제 단순한 호기심으로 생각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반응하는 모습이 조금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니까 더 이상해 보이는데용."
"이상한 존재 아닙니다. 겉모습은 좀 이렇게 생겼어도."
"아무튼 목적은 있을 것 같은데, 아닌가용?"
"목적이라..."
제가 처음 이 세계에서 눈을 떴을 때부터 항상 거짓을 입에 달고 살아왔던 존재는 아니라서, 보통 이렇게 누군가가 저에게 질문을 걸면 상대방이 당황스러워 할 정도로 솔직한 대답을 꺼내곤 합니다.
"그쪽에 대해서 더 많은 걸 알아보고 싶어서요."
"...?"
이번에도 당황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니, 가끔은 저도 적당한 거짓말을 배워야 될 때가 온 건가- 싶기도 합니다. 물론 말은 이렇게 해도 실제로 배워볼 생각은 여전히 없을 것 같지만요.
"그렇게 말하니까 더 이상하거든용."
"그런가요?"
"마치 이것저것 잔뜩 알아내서 모르는 게 있는 것 같으면 그걸로 가르치려고 드는 것 같잖아."
"흠..."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지금까지 만나본 존재들 중에서 이런 경우가 없진 않았기 때문에 좀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지식을 뽐내서 잘보이는 척 하려고 그러는 경우가 없진 않았다고 들었으니까요. 물론 저는 그렇게 가르치는 것엔 자신없고, 누군가를 가르칠 자격도 없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누군가에게 조언을 해 주는 것 정도는 가능하겠죠.
"그러면, 이런 건 어떤가요?"
가볍게 어깨를 으쓱거리며 뒤의 말을 궁금해하는 이 분의 앞에서 다시 말을 꺼냈습니다.
"가르치는 게 아니라, 그쪽이 괜히 더 귀찮아지지 않게 제가 도움을 드리는 쪽이라면?"
"..."
여전히 의심되는 듯 팔짱을 끼며 저를 빤히 바라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런 말에 한두번 당한 게 아닌 모양입니다. 뭐, 그럴 수밖에 없으려나요?
"여전히 못미더운데용."
"못 믿으시겠으면 믿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제가 누군가를 돕는 것 자체는 엄청 좋아한다는 것만 알아주셔도 됩니다. 나름 뒷처리도 조용히 잘 하거든요."
행동보다 말로 해결하는 게 대부분이지만, 그렇게 몸을 쓰지 않고 단순히 말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도 다른 존재들에겐 나름 인상적인 능력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렇게 말을 하면 나름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거려주는 존재도 꽤 없지 않았죠.
"정말로 방해 안 할거죵?"
"저는 무엇이든 다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랍니다."
"...그렇다면, 이것저것 좀 귀찮게 해도 알아서 이해하세용."
"그럼요."
아마 이 분도, 그렇게 조금은 납득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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