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특별한 소식이 없었지만, 그런 와중에도 우리들은 정처없이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사실 특별한 일은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저 이렇게 발걸음을 옮기며 마주하는 새로운 풍경들이 곧 사실상 특별한 일이나 다름없긴 하지만, 남들에게는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아무튼 이번에도 발걸음을 옮겨서 도착한 곳은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난듯한 폐허 도시였다. 곧 무너질 것 같을 정도로 잔뜩 부서지고 망가지고 녹슬어있는 건물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 건물들 사이를 지나가는 것이 꽤나 위험할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건물 몇 개가 부서진다고 하더라도 뭐... 크게 부상을 입지는 않을 것 같다. 그만큼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요소들이 없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주의해야 되는 건 주의해야 되겠지.
"오늘은 여기서 잠깐 쉬었다 갈까."
"꽤 오래 걷긴 했구려. 잠깐 쉬었다 가는 걸로 하세나."
"그나저나... 앉을만한 곳이 있나..."
"어디든 다 앉을 수 있는 곳 아니겠는가? 마침 근처에 넓은 공터도 있으니."
"흠, 하긴."
근처에 있는 공터는 일반적인 그런 평지의 공터라기보단 건물들이 무너지고 남은 잔해가 쌓여있는 공터에 가까워보였다. 그래도 잔해들이 날카롭지 않게 잘 부서져있는 것을 보면 크게 위험성은 없어보이니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홀로그램을 만지며 주변의 장소나 상황을 살펴본다. 혹시라도 다시 발걸음을 옮길 때를 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옆에 앉아 내가 홀로그램을 다루는 모습을 구경하며 동시에 그 홀로그램에 있는 정보들을 같이 바라보고 이야기를 꺼내는 마스터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제 마스터도 직접 홀로그램을 다루는 것까진 아직 어색하더라도 홀로그램에서 정보를 찾아내고 정리하는 것 정도는 완벽하게 다룰 수 있는 정도가 된 것 같다. 하긴, 같이 보낸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적응할 만도 하지.
아무튼 홀로그램을 다루며 정리하고 있던 중, 주변의 풍경이 계속해서 눈에 들어왔다. 뭐, 이렇게 잔뜩 폐허가 되어버린 장소를 방문하는 게 한두번은 아니었지만 오늘따라 유독 더 묘해지는 기분이라고 해야 될까? 한편으론 그동안 크게 신경쓸 일이 없었는데 이렇게 쉬고 있으니 갑자기 생각이 나서 그런 것도 있을 거고... 참 스스로가 생각해도 신기한 기분이었다.
"마스터."
"그래, 키네틱."
홀로그램을 다루다가 팔짱을 낀 채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꺼냈다.
"마스터는 이렇게 폐허가 된 곳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들어?"
"흠, 글쎄... 시간이라는 건 참 놀라운 것이구나- 싶은 느낌이 드는구려."
"그렇게 시간을 거치면서도 늘 한결같은 마스터의 모습도 놀랍긴 하지."
"푸흐, 갑자기 그게 그런 식으로 이어지는가?"
마스터는 눈웃음지으며 주변의 모습을 둘러보곤 다시 말을 꺼냈다.
"평소에는 별 말 없다가, 이 곳에서 그런 얘기를 꺼내는 건 무언가 이 풍경을 보고 떠오른 감정이라도 있는 모양인 것 같소."
마치 내 마음을 다 읽고 있는 것처럼.
"...그런가? 뭐...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기도 하네."
그런 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아서 좀 머쓱한 기분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역시 마스터답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그런 생각을 짧게 가지고 이 곳에서 들었던 생각을 망설임없이 늘여놓기 시작했다.
"만약에 마스터가 없었다면, 나도 이 도시의 건물들처럼 낡고 부서지고 그랬겠지?"
"흐음?"
나의 말을 유심히 듣고 있는 듯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마스터. 그리고 그런 눈빛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누군가의 관리가 없으면 조금씩 부서지고 망가지는 몸이니까."
"...후후, 오늘따라 자네가 꽤 귀엽게 보이는구려."
눈웃음지으며 나의 질문 겸 간단한 생각에 답을 해 주는 마스터. 한편으로는 그런 마스터의 모습에서 나의 기분을 이해하는 듯 다독여주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나는, 키네틱 자네가 없었다면 평생 본모습을 숨기고 홀로 외롭게 다녔을 것이오. 먼 훗날 자네가 낡고 망가지게 되더라도 난 그 옆에 있을테지. 이 무너져내린 건물들과 얽혀있는 자연처럼."
마스터의 대답을 들으니 갑자기 여러가지 감정들이 막 섞여들어오는 듯한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니, 이 낡아버린 건물들의 벽이나 내부에는 늘 자연과 함께하는 듯한 모습이었으니까. 적어도 이 건물들에겐 함께하는 것보단 자연에게 잡아먹히고 지배당한 모습이겠지만, 나에겐 그런 잡아먹히는 것이나 지배가 아닌 마지막까지 마스터와 '공생'하는 것이니까. 그렇게 지금도, 먼 미래에 망가진 내 모습이어도 늘 곁에는 마스터가 있어줄 것이라는 확신을 들으니 지금까지 짧게 들었던 생각들이 어느새 다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역시 마스터는... 언제나 내 말에 대한 해답을 줘서 좋다니까."
"누구나 다 그런 생각이나 걱정같은 건 존재하기 마련이고, 나는 완벽한 해답이 아닌 그저 나의 생각을 알려준 것일 뿐이라네. 하지만 그게 키네틱에게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오."
"나도 굳이 정답을 바란 건 아니니까 괜찮아. 그리고 그런 경험들이 곧 누군가에겐 큰 도움이 되기도 하는걸."
"푸흐, 오랜 시간을 살아온 게 이럴 땐 꽤나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소."
"경험이 많은 건 언제나 부럽단 말이지-..."
그러다 시간이라는 말에 문득 홀로그램을 다루다가 발견한 알림이 있어서 다시 한 번 그 알림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알림에는 확실히 서로의 기분이 좋아질만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러고보니 마스터, 그거 알고 있어?"
"어떤 것 말인가?"
홀로그램을 서로에게 잘 보이도록 위치한 뒤 알림을 크게 띄워서 마스터와 내가 서로 동시에 잘 볼 수 있도록 배치한다.
"우리가 벌써 1400일이나 되었대."
"호오..."
마스터도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지(아니면 이미 예상하고 있었지만 혹시라도 내가 먼저 말해주길 원했던 것일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꽤나 놀라는 모습과 함께 싱긋 눈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말을 꺼냈다.
"서로 함께한 것도 벌써 이렇게 오랜 시간이 되었다는 것이 재미있는 것 같소."
"그러게 말이야. 늘 말하는 것이지만... 함께 해 줘서 고마워, 마스터."
"나야말로, 키네틱 자네와 늘 여행을 다닐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고 말해주고 싶소."
"앞으로도 더 많은 곳들을 보러 다니자구."
"언제든 환영이오."
나의 눈을 입으로 잠시 바꿔서 가볍게 마스터의 눈에 입을 맞추듯 얼굴을 가까이 대고 싱긋 웃어보였다. 나도 그렇지만 오랜만에 이렇게 눈 대신 입을 보이는 게 마스터도 반가운지 웃음소리를 내며 끌어안아준다.
"입을 보이는 모습은 꽤나 오랜만인 것 같구려."
"그러게 말이야. 늘 생각하는건데, 이렇게 입이 보이면 좀 장난꾸러기같지 않아?"
"자네는 언제나 장난꾸러기라네, 후후."
"마스터가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앞으로 더 열심히 장난을 쳐야겠는걸-"
다시 싱긋 웃어보이며 주변의 경치를 둘러보곤 다시 마스터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앞으로도 어디서든, 이렇게 즐거운 시간이 항상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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