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otL

[Eden of the Lamb (2P AU)] 221013 -대립-

 

 

 


2022.10.10 - [CotL] - [Cult of the Lamb / 2P 세계관] 221010 -RE:BIRTH-


 

 

무덤이 많은 공터에서 조금 발걸음을 옮겨 도착한, 과거 교단의 흔적이 남아있는 폐허. 아마 이 곳에서 목숨을 잃은 존재들이 그 공터의 무덤에 묻혀있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며 어린 양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금씩 노을이 지고 있는 하늘 아래에서 이렇게 모든 것이 부서지고 누군가의 인기척도 없는 폐허를 보고 있으면 더더욱 마음이 공허해지는 느낌이었다. 이 곳에 있던 존재들도, 자신처럼 다 무고한 희생양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마음 속에서 분노가 쌓이는 것 같기도 했다.

망가지고 부서진 잔해 사이에서 보이는, 이 곳의 추종자가 남겼던 흔적들을 보고 있으면 그들이 받았을 고통은 얼마나 컸을까, 그들 중에서 기다리는 자에게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고 구원받은 존재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다시 시간이 더 빠르게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그런 흔적들이 보이는 것도, 자신이 다시 깨어난 이유를 다시금 가슴 속에 깊게 새겨두는 계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흔적들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 근처에서 누군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향해 기다리는 자가 내려주었던 힘으로 간단한 무기를 만들어 경계 태세를 보이자, 그 존재는 자연스럽게 기겁하며 항복하는 자세를 취했다. 애초에 처음부터 어린 양을 공격하려는 목적이 없다는 게 보이긴 했었지만.

 

 

"저, 저는 당신의 적이 아닙니다...!"

 

 

결백하다는 것을 증명하듯 그 목소리에는 잔뜩 당황스러움과 두려움이 녹아 있었고, 그런 느낌을 깨달은 어린 양은 무기를 거두고 그 목소리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제서야 마음을 편하게 놓은 존재는 자신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하며 자신이 왜 이 곳에 왔는지, 그리고 왜 어린 양을 찾아오게 되었는지에 대해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단, 여기까지 오느라 조금 고생을 해서... 살짝 숨을 고를 시간을 주십시오..."

 

 


 

 

저는... '라투' 라고 합니다. 어떤 무리 속에서 다른 존재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죠. 그리고 그 무리 속에는, 아마 당신이 찾고 있을 그 분...이자 나의 형제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무리가 어떤 무리인지 설명해 드려야겠죠.

 

 

교단에서 주교를 섬기며 평화롭게 살아가던 다른 추종자들처럼, 저도 처음에는 그런 단순한 추종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나의 형제도 그렇게 주교의 아래에서 온갖 안정과 평온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었죠. 만약 그렇게 계속해서 그런 주교의 축복을 누리고 있었다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참 좋았겠지만... 어째서인지 나의 형제는 그런 평온을 계속해서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더군요.

처음부터 그렇게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던 건 아니었습니다. 교단 내에서 어떤 소문같은 것이 퍼지곤 했었죠. 도대체 어떤 이유로 반동분자가 생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반동분자의 반목 과정에서 생겨난 이야기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이런 평화들도 결국은 우리들을 이용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라는 식으로... 말이죠.

 

...만약 그 소문을 듣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이 상황이 되지 않았겠지만... 소문이라는 건 늘 빠르게 퍼지고 이 이야기를 듣게 된 자의 생각을 뒤집어버리기 마련이죠.

 

 

머지않아 나의 형제는 그 소문을 기반으로 자신과 함께할 무리를 만들고, 그 무리는 조금씩 더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에서는 그들을 '이교도'라고 표현하며 경계하기 시작했고... 그런 경계가 우습다는 듯 무리는 다른 교단을 잡아먹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해버렸죠.

그렇게 무리를 성장시키면서 늘 나의 형제가 하던 말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수단이 되지 않으려면, 더 큰 힘을 키워야 한다."

라고 말이죠.

 

 

...그래서, 그 힘을 어떻게 키우려고 했을까요? 이미 당신이라면... 답을 알고 있기는 하겠지만요.

 

 


 

 

그 이후, 나의 형제는 직접 자신이 나서서 평화로운 교단을 어지럽히고, 그 교단을 지키고 있던 증인들을 처치하여 그들의 눈으로 자신의 힘을 조금씩 만들어나갔고, 결국은 번제를 할 수 있는 경지까지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어떻게 그것만으로 번제가 가능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나의 형제를 보며 흡족스러워하던 어딘가의 악마가 있었던 게 아닐까 하고 조용히... 추측만 해 보고는 있습니다.

일단 추측은 뒤로 미뤄두고, 그렇게 잡아온 증인이나 추종자들을 번제의 제물로 삼아서 힘을 키워나가고 있으니... 평온 속에서 살아가고 있던 저에게는 그저 공포와 두려움의 모습일 뿐이었죠. 그래서 항상 형제를 버리고 전향해야 할 지, 아니면 어떻게든 형제라는 그 하나만으로 꿋꿋하게 이 곳에서 버텨야 할 지... 고민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제가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죠.

 

 

"이런 식으로 강한 힘을 원했던 건 아니다..."

 

 

이미 힘에 잔뜩 취해 있었던 나의 형제는 그런 제 대답에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쉬곤 마치 저를 가르치듯 얼굴을 마주하며 씨익 웃고는 말을 꺼냈죠.

 

 

"단순히 누군가의 밑에서 지내는 걸로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

힘을 얻으려면 그만큼 그 힘을 찍어누를 더 큰 힘이 있어야 한다고."

 

 

...그래요, 뭐, 틀린 말이라고 부정하진 않습니다. 큰 힘을 위해선 더 큰 힘으로 모든 걸 압도해야죠. 하지만 굳이 이런 상황을 즐기지 않고 굳이 그걸 압도해야 되느냐는 말이었습니다. 아마 저는 계속해서 이렇게 생각하겠지만, 나의 형제의 생각을 바꾸기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이 된 것이겠죠.

 

 

"강한 힘이 있으면 지금보다 더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그걸 왜 거부하는 거야?"

"그건..."

 

 

나의 형제의 말처럼, 지금보다 더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는 있겠죠. 그런데 그렇게 손에 거머쥔 편안함과 행복이 영원히 지속되는 걸까요? 누군가가 그렇게 손에 거머쥐었다면, 또다른 누군가도 그걸 보며 똑같이 자신이 그런 영광을 얻으려고 올라서지 않을까요?

그것까지는, 나의 형제가 생각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모르겠다. 좀 생각이 더 필요하겠구나."

"언제든 생각이 결정되면 이야기하라고. 형을 위한 자리는 언제나 내 옆에 있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아직은 나의 형제의 옆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조심스럽게나마 당신과 마주할 수 있는 셈이죠."

 

 

어린 양은 지금의 일이 생각보다 단순한 일이 아님을 라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처음부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도록 막을 수 있었는데 결국 막지 못해서 일이 더 커진 것이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었고... 그렇게 커진 일은 아무도 쉽게 수습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 참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위험을 감수하고 이렇게 자신을 찾아와서 용기있게 이야기를 꺼내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라투는 이것이 자신이 해야 될 일이라며, 당연한 일이라고 말하고는 미처 말하지 못했던 것들도 조금씩 알려주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나의 형제에 대한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군요. 그 이름은 '라타우' 입니다."

 

 

'라타우'. 무조건 기억해야 될 이름이라고 어린 양은 다짐하고 있는 듯 보였다.

 

 

"아마 다른 교단같은 그런 추종자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에서 그 이름을 부른다면, 조금은 두려워하는 모습과 함께 이런저런 정보나 경험같은 것들을 알려줄 것입니다. 그런 정보들을 이용해서, 부디 나의 형제를 제압해 주십시오."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어린 양.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본 라투는 곧 시간이 다 되었다는 듯 저 멀리 어딘가를 향해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자신이 돌아가야 될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닐까, 라고 어린 양은 생각했고 라투는 조금은 다급해하는 모습과 함께 돌아갈 준비를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마치 큰 중대사항을 언급하는 것처럼 은밀하고 조용하게 어린 양에게 부탁을 했다.

 

 

"제가 당신을 돕고 있다는 걸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십시오. ...언젠가 자연스럽게 그가, 나의 형제가 깨닫게 될 때까지."

 

 

어린 양도 한번 더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신을 도와주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라타우와 한 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존재였으니... 자신이 누군가에게 '라투가 자신을 도와주고 있다' 라는 걸 언급하는 순간 그것은 라투를 배신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라는 걸 어린 양은 이미 깨닫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모습에 라투도 조금은 어린 양을 신뢰하고 있는 듯 보였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늘 당신에게 생명의 권능과 축복이 있기를."

 

 

그 말과 함께, 라투는 은밀하게 모습을 숨겼다.

어린 양도 그 모습을 보고는, 근처에서 쉬었다가 활동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언제가 될 지는 알 수 없지만, 평온을 위협하는 그 힘을 제압하는 것이 어린 양의 목표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