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저 평범하고도 평범한, 교단 속에서 살아가던 단순한 추종자였다.
다른 추종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교단을 이끄는 주교들이 그랬던 것처럼... 평화로 가득한 낙원 속에서 살아가던 존재였다.
하지만 어떤 야망같은 것이, 이 평화를 부수고 스스로 혼돈 속으로 뛰어들었다.
당시의 나는 '평화'라는 것에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살아갈 수 있는 것 자체는 당연히 나도 환영하긴 했지만, 뭐랄까... 조금은 새로운 걸 원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다가 이 교단에서 빠져나온 뒤 자신들만의 혼돈의 교단을 세우겠다며, 그렇게 커진 혼돈으로 이 평화를 전부 잡아먹겠다는 그런 누군가의 거대한 야망이 나를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그 야망에 이끌려 평화 속에서 살아가던 교단을 배신하고, 그 혼돈의 교단으로 발을 들였다. 주교들의 교단에서 살아가던 추종자들은 이 혼돈의 교단에서 살아가는 추종자들을 '이교도'라고 표현했었는데, 뭐... 확실히 그들의 눈에는 혼돈의 교단 쪽이 이교도로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혼돈의 교단에서도 주교들의 교단 추종자들을 이교도라고 불렀으니... 아무튼 서로가 서로를 대적하며 시간을 보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이 교단에서 조금씩 평화라는 것에 대해 잊어가고 있을 때쯤, 교단의 지도자의 명령을 받아 성전에 가야 할 일이 생겼다. 보통은 여러 명을 보내곤 했지만, 지도자는 내 실력을 보곤 혼자 가도 될 것 같다며 간단하게 혼자서도 해결할 수 있는 명령을 내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누군가가 같이 있었다면 아마 '그 일'을 겪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타이밍이 좋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일'은... 내가 지금까지 쌓아왔던 생각들을 뒤집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성전에서 '주교들의 교단'에서 이 '혼돈의 교단'을 저지하기 위해 잔뜩 무장을 하고 찾아오는 추종자들을 저지하고 청소하는 과정을 거치며 앞으로 나아가던 중, 저 멀리서 유독 평소의 느낌과는 다른... 온화하면서도 차가운 느낌이 들었기에 그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 적이 있었다. "이런 길이 있었던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험난하고 위험한 길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이질적인 느낌 하나만으로 거기에 발걸음을 옮긴 나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다.
아무튼 그렇게 도착한 곳에는... 무덤덤한 모습으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어떤 누군가가 서 있었다.
"반갑습니다. 이 곳까지, 어떻게 찾아오셨는지요."
부드러운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생명의 기운. 그렇다는 건... 소문으로만 듣던 그...
"...조금 특이한 느낌이 들어서 찾아왔더니, 네 녀석이 있더라고."
"그렇군요."
녀석은 나를 가볍게 둘러보더니, 다시 눈을 감으며 말을 이어나간다.
"당신은, 혼돈의 교단의 행동대장이군요."
"뭐야? 그걸... 네 녀석이 어떻게 알고 있는데...?"
"그야 저는, 모든 생명들의 삶을 바라보고 있으니까요. 저에게 스스로를 소개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답니다."
"혹시 네 녀석이..."
내가 질문을 마저 끝내기도 전에, 마치 예상했던 질문이라는 듯 녀석은 말을 꺼냈다. 어쩌면, 내 마음같은 것도 다 읽을 수 있는건가? 왠지 조금 소름이 돋기도 했다.
"저는, '기다리는 자'. 당신과 같은 생명들을 바라보며 그들에게 또다른 자비를 내려주고 있습니다."
"말로만 듣던, 생명의 권능이라니. 돌아가서 이 정보를..."
그 자리에서 벗어나 혼돈의 교단으로 돌아가려고 뒤를 돌아보자마자, 등 뒤에서 느껴지는 기다리는 자의 기운에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았다. 분명 그가 나를 묶어둔 것도 아니었는데 어째서인지 발이 떼어지지 않는 상황에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이런 게 한편으로는 위압감인가 싶어서 다시 기다리는 자를 향해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았을지, 아니면 안 보았을지 모를 정도로 한결같이 눈을 감은 그의 모습도 보였다.
"당신에게 물어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에게?"
잠시 말이 없다가 다시 말을 꺼내는 기다리는 자.
"혼돈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굳이 기다리는 자가 아니더라도 주교들의 교단에서 살아가던 추종자들도 종종 물어본 질문이었기에, 늘 그래왔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늘 하던 대답으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려주었다.
"평화 속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건 당장은 좋을지라도 미래를 대비했을 때 아무것도 못 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난 새로운 힘이자 미래인 혼돈을 선택했다."
나의 대답을 들은 기다리는 자는 마치 무언가를 알려주듯 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평화는 나태함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자신만의 삶을 좀 더 안정적으로 찾는 과정이죠."
겉으로 듣기엔 마치 내가 알고 있는 정보가 잘못된 정보인 것처럼 가르치는 듯한 느낌이지만, 이 말을 실제로 앞에서 듣고 있었던 나에겐 가르친다는 느낌보단 새로운 무언가를 더 집어넣은 것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나의 의견을 무시하고 고치려는 게 아닌, 나의 의견도 이해하지만 이 부분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라는 그런 느낌. ...이게 가르치는 건가? 아무튼... 그 대답을 들었던 나는 딱히 깊게 새겨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다고 내가 다시 평화 속으로 돌아갈 것 같아? 웃기는 소리."
나의 대답을 들은 기다리는 자는 나에게 말을 건네곤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마치 그 말이 지금의 상황에서 나에게 전해주는 마지막 말인 것처럼.
"당신의 삶을 제가 강요할 이유는 없습니다. 모든 건 당신의 의지로 이루어지는 것이니."
그 부드러운 말을 마지막으로, 기다리는 자는 어느샌가 눈 앞에서 사라지고 이 곳은 나 혼자만이 남게 되었다. 그렇게 혼자 남아서 기다리는 자의 말을 되새기고 있으니... 그렇게 되새겨진 말들이 내 고정관념 속에 들어와서 온통 휘젓고 있으니 생각이 복잡해지는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니, 이 곳에서 결국 내가 하는 건 교단의 지도자를 위해서 헌신하는 것 뿐이지 정작 나 자신의 미래같은 건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차피 마지막을 장식하는 건 지도자를 위한 희생 뿐이라면서 세뇌처럼 들었던 것들도 기억이 나고... 실제로 마지막을 맞이하는 추종자들은 대부분 지도자 앞에서 제물이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뿐이었다.
이게 미래를 대비하는 건가? 대비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닌가? 어차피 '새로운 힘이자 혼돈'은 나에게 새겨지는 것이 아닌 이 교단의 지도자에게 새겨지는 것일 뿐이었다. 우리들은 그저 그 힘의 희생양일 뿐이었고.
"...그렇군."
어쩌면 나는, 정말로 이 혼돈의 교단 속에서 지도자에게 세뇌를 당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세뇌를 풀어준 것이 기다리는 자였고. 어쩌면 그는, 정말로 그렇게 혼돈의 교단 속에서 살아가던 추종자들의 세뇌가 풀리길 '기다리고' 있었던 게 아닐까.
이제 다시 생각이 바뀌었다.
「모든 걸 가지는 건 라타우뿐이며, 우리들은 결국 라타우의 제물일 뿐이다.」 라고.
"이거 참 미안하게 됐습니다, 지도자님. 아니, 지도자씨.
신님이 나에게 너무 많은 걸 알려줬거든."
더 이상 나는 그를 지도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믿는 것은 내 마음 속에서 새로 떠오르기 시작하는 나의 미래이며,
나를 새롭게 이끄는 것은 이 세뇌를 풀어준, 기다리는 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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