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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로로/자캐

[자캐 - 옵시디언/즈] ObsidiaZ

그렇게 얼마나 뒤를 따라다녔을까, 여전히 어디로 가는지 감을 잡지 못한채로 길을 걷고 있었는데 「좀 쉬고 싶은데…」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뒤만 따라다니는 건 재미도 없고, 목적지도 어딘지 모르니까 더 재미가 없다. 차라리 괜히 따라갔나- 하는 후회만 생기기 시작할 뿐. 그래도 의외로 이 녀석의 신기한 모양새 때문에 다시 후회가 가라앉기 시작했달까.


전체적으로 길다- 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낚아채는 행동이라던가 겁주는 행동같은 건 엄청나게 잘 할 듯. 이 몸이 처음 보자마자 깜짝 놀랄 정도로 순발력도 좋은 녀석이기도 했고. 같이 협동으로 누군가를 놀라게 하는 일을 짜면 꽤 재미있을 듯한데, 아무래도 얘는 그런 건 전혀 신경쓰지 않는 모양새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녀석의 입을 좀 열게 할 필요성이 있겠는데, 전혀 타이밍을 못 잡겠다. 천하의 이 몸이 타이밍을 못 잡을 정도면 아무래도 이 녀석의 위압감을 눈치챌 수 있겠지.


근데… 자세히 보니까 여기로 계속 가면 막다른 길이 나오는데?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여기에 온 걸까. 예상대로 막다른 길에 도착하자, 갑자기 벽에 매달리기 시작하더니 그 상태로 이 몸을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아마 어느 정도 이 몸을 파악했다고 생각했는지 그제서야 말을 하려는 듯 입을 열기 시작했다.


"하,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여기까지 오는 것도 정말 힘드네."

"…뭐냐, 말할 수 있었는데 왜 말 안 했냐."

"좀 신기하게 생겨서 관찰하고 있었지."

"음음, 그래. 이 몸이 좀 신기하게 생겼긴 하지."

"그래서 처음엔 좀 나쁜 녀석일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 이 곳에 온 목적도 그런 이유이기도 했고."

"여기서 뭘 하려고 했는데?"

"결판을 내자- 라고나 할까?"

"…풋, 그래봤자 못 이길텐데. 이 몸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당하는 녀석이 아니라고."

"어디, 대충 확인이라도 해 볼까. 얼마나 자신만만한지."


말을 끝내자마자 갑자기 이 몸을 공격하려고 벽을 타며 이 몸에게 조금씩 차근차근 다가오며 이 몸을 교란하려고 하는 작전을 펼치는 것 같았는데, 유감이지만 그런 건 심심해서 장난 수준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 녀석이 눈 앞으로 다가와서 공격하려고 할 때마다 날개로 툭툭 쳐내며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 공격은 아니고, 그냥 말했듯이 먼지 터는 것처럼 툭툭 쳐내는 정도.


이 몸의 방어 능력에 조금은 놀랐는지 이 몸의 말을 조금씩 믿기 시작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 다른 녀석들은 자신에게 덤볐다가 다들 없어졌을테니 자신감이 넘쳤을지도 모르는 일. 서로의 위력이 어느 정도 강하다는 걸 눈치챘고, 그래서 더 싸워봤자 아무런 이득도 없을 것이라는 걸 깨달았는지 이제서야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꽤 강한데? 역시 신기하게 생긴 만큼 위력도 만만치 않아."

"너도 꽤 날렵하네. 날렵한 녀석은 언제봐도 참 신기하고 부럽거든."

"흠, 너는 날렵하지 않은건가?"

"날렵하다기보단, 그냥 날아다니는 녀석이지."

"그것도 나름 대단한 능력인 것 같은데."

"원한다면 내가 하늘 구경이라도 시켜줄까?"

"정말 그게 가능한 거냐? 믿기지 않는데…."

"날아다닐 수만 있지 누군가와 함께 날아오를 수 있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나보군."

"조금은."

"그렇다면 지금 여기서 이 몸이 새로운 체험을 시켜주도록 하지!"


녀석을 잡고 날아오르려는 순간,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듯 잠시 고민하는 것 같았다. 하긴, 아마 이 녀석의 머릿 속에는 이 몸이 이 녀석을 잡고 날아오르자마자 바로 떨어뜨릴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거겠지, 아마? 근데 솔직히 얜 떨어뜨리면 바로 어딘가에 붙어서 위기를 모면하게 생겼지만.


"이 몸이 배신할 것 같아서 그렇지?"

"솔직히 아직 그렇게 신뢰를 얻진 못했으니까."

"걱정 마. 누굴 없애는 건 재미없어서 안 하니까 말이야."

"그럼, 믿어봐도 되겠냐?"

"믿어봐. 더욱 강하게 믿을수록 더욱 재미있을 테니까!"


이제서야 조금 신뢰를 가진 듯 다시 다가오기 시작했다. 좋아, 그럼 시작해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