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캐 - 키네틱 디바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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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과거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저 기억나는 건, 과거의 내가 내 염동력을 주체하질 못해서 그것을 제어해 줄 푸른 수정이 만들어진 과정에 대한 것 뿐이다.

도대체 과거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그 당시에 지내왔던 걸까? 지금처럼 무뚝뚝한 모습으로? 아니면 그 당시에는 누구보다도 활발했던 모습으로?

내가 어떻게 이 모습으로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건지, 누구의 도움과 보살핌으로 지금까지 지내왔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코지카타와 케테르를 만난 이후부터의 기억만 나에게 남아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나는 실험체가 아니다. 즉, 실험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이렇게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는 소리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이유로 나는 내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굳이 나는 과거를 기억해내고 싶진 않다. 그 과거 속에 즐거운 과거만이 가득하든, 불행한 과거만이 가득하든... 결국 그 과거들을 꺼낸다고 해서 미래가 달라지는 건 아니기에, 그저 아무런 기억도 떠오르지 않는 깊은 늪 속에 계속 집어넣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과거가 아무리 즐거웠다고 해도 지금 이 순간만큼 즐거울 수도 없겠지. 그 때의 기억나는 과거만 생각해봐도, 분명 그 이상의 과거는 떠오르는 게 없지만 그 당시의 나는 자신의 능력에 의해 주변 존재들에게서 억압을 당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없지 않았고.

사실 지금도 마땅히 엄청 즐겁다- 까지는 아니지만, 분명 지금까지의 밋밋하고 아무런 의미 없는 그런 삶에 비하면 지금은 참 나은 삶을 지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걸까, 계속해서 관심을 달라고 갈구하는 느낌도 들었다. 왠지 이러지 않으면 마치 기억나지 않는 과거처럼 그대로 다른 존재들에게서도 잊혀질 것 같아서... 그 누구의 기억 속에도 남지 못한 채 사라질 것 같아서.

많이 불안했었다. 이대로 영원히, 이렇게 지내게 되겠구나- 라는 생각도 많이 했었고. 물론 지금도 가끔씩 그런 생각이 들어서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아도 마음 속에선 굉장히 괴롭기도 했다.

그래도, 지금은... 이 괴로운 마음을 달래줄 누군가가 있어서, 어쩌면 다행인 걸까. 사실 아직 완전히 이 괴로움이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곁에 아무도 없을 때보단... 조금 나아진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사실, 나는 결국 이렇게 영원한 고통 속에서 지내야만 했던 걸까. 아니면 누군가를 만나면서 조금씩 고통을 해방시켜 가는걸까.

다른 건 모르겠어도... 확실한 건, 지금의 장미 신사와의 여행이 내 깊은 기억 속까지 끝까지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아니,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면, 나는 장미 신사와 함께하는 여행이 좋으면서도, 장미 신사가 좋으니까.

좋아하는 존재와 함께하는 여행이라니, 그 누가 싫어하겠는가. 굳이 내가 아닌 다른 존재였더라도 자신의 모든 걸 바쳐서라도 같이 다닐 것이다.

억지로 과거를 생각해내려는 것보다, 이렇게 여행을 다니며 특정한 것들을 바라보게 되면서 문득 자신은 과거에 이랬다- 라는 걸 깨닫는 게 더 쉽고 빠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잊어버린 과거, 더이상 억지로 생각해내려고 하긴 싫다. 그저 지금의 기억을 내 마음 속에, 그리고 내 머릿속에 계속해서 담아두고 싶다.

...비록 이런 나 자신이지만, 다른 존재의 기억 속에는 좋은 존재로 남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노력해야겠지. 귀찮아하는 모습도 버려야 될 것이고.

그렇게 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모르겠다고 해서 그대로 포기할 수는 없겠지.

나를 여행의 동반자로 허락해 준 장미 신사에게, 다시금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나에게 새로운 기억을 조금씩 심어줘서, 내 마음속에 영원히 시들지 않을 꽃을 심어줘서.

내 마음속에 피어있는 이 꽃, 시들지 않도록 영원히 잘 관리해 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