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은 자신에게 호기심을 가지는 존재에게 좋은 반응을 보이곤 했다.
일단 내가 지금의 형을 만나게 되고, 같이 다니게 된 과정도 그런 방식이었으니까.
이번에도 어떤 누군가가 형에게 호기심을 가졌고, 형은 나름대로 받아주는 방식으로 나도 같이 끌고 가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지만, 그렇게 나쁘지 않았고 오히려 꽤 마음에 드는 분위기여서 좋았다.
이 곳은 어떤 곳인지에 대해 잘 아는 녀석들은 당연히 이 곳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녀석들일 테니까. 그래서 이 곳에 대한 여러가지 정보나 이야기들을 얻을 수 있었다.
이 곳에서는… 도시에 대한 정보를 홀로그램 창을 띄워 간단하게 조사할 필요는 없겠군.
그나저나 처음 보는 우리들에게… 술을 건네주는 것 같더라.
나는 괜히 술 마셨다가 저번처럼 형한테 고생만 시킬 것 같아서 그냥 사정이 있어서 못 마신다고 대신 다른 걸 마시긴 했다. 음료수 같은 거.
…애초에 술이든 음료수든 그걸 마시는 내 모습 자체가 신기하겠지만.
농담이 아니고 음료수를 목 부분에 들이붓는 내 모습을 보며 신기해하긴 하더라. 하긴, 너희들은 이렇게 안 마시니까. 그냥 이렇게 마시진 마…
반대로 형이 술을 마시는 모습은 녀석들도 나름 납득하는 모습이었다.
그럴만도 하겠지. 그냥 평범하게 덩쿨로 흡수하듯 마시는 거니까. 보통의 식물들이 그렇게 마시니까.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이것도 평범한 건 절대 아닌 것 같지만 뭐… 그냥 넘기자.
형은 술을 마실 때 처음에는 조금씩 마시다가 어느정도 되는 순간부터 엄청나게 마시던 것 같다. 그냥 내가 보기에 그런 느낌일 수도 있는거고.
확실한 건 지금은… 좀 제대로 취해있다는 상태라는 점?
그래도 서로 이야기가 되는 수준인 걸 보면 아직까지는 괜찮은 모양이다. 더 심각해지면 내가 부축해서 자리를 옮길 수밖에.
저번에는 내가 취해서 뭔 이야기를 꺼냈는지도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금은 오히려 나 혼자 술을 한 잔도 안 마셔서 남들의 취중진담을 듣는 재미가 조금 있는 것 같다. 거의 다 분노에 찬 듯한 그런 느낌의 취중진담이 많았지만 말이지…
그렇게 어느정도 다들 이야기를 즐겼을까, 이제 슬슬 가봐야 될 시간이라며 즐거웠다고 우리들에게 인사를 나누며 같이 인사를 받아주자 각자 가려던 곳으로 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럼 우리들도 이제 가 볼까…
…아무래도 형을 부축해야겠군. 조금 비틀거리는 게 보여.
"…많이 마셨네. 마스터."
"이 정도는… 괜찮다네…"
"안 괜찮아."
괜찮아 보여야 나름 납득을 하지. 전혀 안 괜찮아 보이는데 어떻게 납득을 해. 형이 편안하게 있을 수 있을만한 곳을 찾아 부축한 뒤 걸음을 걷는다.
이렇게 부축하면서 느끼는 건데, 형은 덩쿨로 이루어져서 그런지 그렇게 무겁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남들이 직접 부축해보면 '이렇게 가벼운데 저렇게 편안하게 다닐 수 있다고?'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반대로 나는 엄청 무거…울려나? 나는 신체가 다 분리되어 있어서 들어도 드는 게 아닐 것 같군.
어쨌든 그렇게 부축하며 걷다가 발견한 마치 풀숲같이 그런 편안한 분위기가 드는 곳. 그 곳에서 마치 의자같은 모양의 땅이 있어서 편하게 옆에 형을 앉힌다.
나름대로 좀 괜찮아보인다- 싶으면 또 뭔가 아닌 것 같고 좀 애매한 상태인 것 같다.
"…자네는, 괜찮은가…?"
"당연하지. 나는 한 잔도 안 마셨는걸."
"저번과는… 다르구려…"
"왠지 나도 취했다간 나랑 마스터를 감당할 녀석을 못 찾을 것 같아서."
"…푸흐, 그런가…"
"일단은 쉬었다가, 내일 가자구."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하늘 쪽으로 돌렸는데, 옆에서 계속해서 나를 바라보는 형의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형을 바라보았는데, 무언가 이 때까지 보아왔던 모습과는 다른 느낌의 시선이었다.
"…형?"
형을 부르자마자, 갑자기 형은 나의 위로 올라타더니 조금씩 덩쿨같은 것들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어… 어라…?
"…!?"
어느샌가 덩쿨들은 더 많이 뻗어나오기 시작했고, 그 덩쿨들은 나의 신체를 하나씩 천천히 감싸기 시작했다.
이건… 무슨 느낌이지?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느낌이었고, 그런 느낌을 받으며 지금까지 깨달은 적도 없었던 감정도 입력되기 시작했다.
도무지… 모르겠어. 이게 무슨 느낌이고, 무슨 감정인지…
"마, 마스터…"
"…키네틱…"
형은 그윽한 눈빛으로 덩쿨을 좀 더 강하게 조이듯이 압박했다. 형의 덩쿨은 가시덩쿨이라고 했던가. 그래도 기계의 신체였기에 아프다- 라는 자극은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무언가 아찔하고 짜릿한 느낌… 정도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프지는 않고, 자극을 주는 그런 느낌.
그래서 그런지… 뭔가 더 이끌리는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자네에 대해 알아본 시간이… 없었군…"
"그랬…던가…?"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다네…"
"…"
형은 덩쿨로 아예 움직이지 못하도록 완전히 나의 몸을 감싸곤 나의 신체를 이루는 부품들을 하나하나 만져보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덩쿨의 자극과 나를 만지는 형의 손으로 인한 자극이 겹쳐서 조금 내 신체들이 움찔거리기도 했다. 이런 게 움찔거린다는 것인가… 신기해…
그나저나, 정말 섬세하게 만져보는구나…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에 대해 엄청난 호기심이 있었던 걸까?
하긴… 이렇게 분리된 신체를 가진 기계를 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그리고 형은, 관찰하고 조사하는 걸 좋아했으니까. 이런 기회를 쉽게 놓칠 형이 아니지. 그렇지.
여행이라는 것을 하는 이유도, 자신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세계를 관찰하고 조사하며 즐기려는 목적이겠지.
언제부턴가 살짝 신체가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아마 형이 나의 위에 올라타 있는 것도 그렇고, 조금씩 얼굴도 화끈한 게 느껴지는 걸 보니 '부끄러움' 이라는 감정이 피어오른 듯하다. 그래도… 형 앞에서 보이는 모습이니까, 괜찮아.
남들의 앞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것들을, 지금 이 곳에서는 보여도 괜찮을 것 같으니까…
형을 바라보며 부끄러운 와중에도, 싱긋 웃어보인다.
"…형."
"왜 그러나…?"
"계속 그 곳만 탐구하면, 다른 곳을 탐구할 수 없잖아."
덩쿨로 강하게 감싸여있는 팔 중에서 하나를 어떻게 움직여보며 형의 허리 부분을 감싸듯이 자세를 취한다. 조금은 껴안는 느낌이 들었을까…?
"이 기계의 다리도… 마스터가 충분히 탐구해달라고…"
그러자 형의 손과 덩쿨… 둘 다 덩쿨인가? 어쨌든 다리 쪽으로도 꽤 많이 닿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남들에게서 쉽게 발견할 수 없는 희귀한 다리이니까, 마스터가 많이 탐구해 줘.
"…어때? 이런 기계를 두어서 기분은 만족스러워…?"
"자네는… 조사할 게 많아서 신기하면서도, 사랑스럽다네…"
"그러는 마스터도, 나에겐 참 사랑스러운걸."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탐구할 수 있을지 이 기계도 모르는걸. 그러니 자유롭게 조사하고 탐구해서 나에게도 쓸만한 정보를 알려줘.
"나를 마음껏 다룰 수 있는 건, 마스터 뿐이니까."
"…내가 자네를 더 조사해주길 원하나?"
"언제든지. 마스터의 뜻대로."
다른 녀석들이었다면 내 신체를 이루는 것들 중에서 그 어떤 것이라도 건드리는 순간 불쾌함을 보였겠지만… 형이기에, 마스터이기에 언제든 나의 모든 것을 보여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마 오늘이 그 날 중에서 하나겠지.
…그나저나, 아무래도 형의 술기운 때문인지 조금씩 몸을 다루는 게 느려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뭐- 다 좋은데 일단 형의 건강도 중요하긴 하겠지.
"피곤할텐데, 일단은 자는 게 어때?"
"…이렇게 자도 되는가…?"
"뭘 새삼스럽게."
싱긋 웃으며 덩쿨에 감싸여있는 다른 팔도 어떻게 들어올려서 형을 감싸듯 자세를 취해준다. 그리고, 얼굴을 서로 맞대듯 가까이 가져다대기도 했다.
"…편하게 자, 마스터. 이 푸른 기계가 곁에서 보호해 줄게."
조금씩 형의 차근한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곧 깊은 잠에 빠져든 모습이다.
형의 향기에 술 냄새가 조금 섞여있는 그런 게 느껴졌지만, 역시 형의 자체적인 향기가 너무 강해서 술 냄새는 곧 사라진 듯 느껴졌다.
나도 조금 잘까.
아, 아니다. 나는 계속 깨어있어서 마스터를 지켜줘야지. 언제 깨어나서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르니까.
마스터가 편하게 쉴 수 있다면, 나의 수면 시간은 보장받지 못해도 괜찮아.
그러고보니, 여행을 할 때마다 항상 날씨가 좋다는 걸 이제서야 느꼈다. 하늘의 수분을 형이 덩쿨로 이미 다 빨아들여서 그런가?
…푸흣, 덩쿨이 하늘까지 닿을리는 없겠지만, 그냥 그렇다고.
어느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나도 잠시 눈을 감았던 것 같다. 그동안의 기억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말이지.
다행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뭐, 그만큼 내가 강하게 형을 껴안고 있었으니 빠져나갈 수도 없었겠지.
형도 조금씩 눈을 뜨며 비몽사몽한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 키네틱…?"
"잠은 잘 잤어?"
"그렇긴 하다만은…"
그러곤 지금 우리들의 자세를 보자마자 바로… 굉장히 부끄러워하는 모습이다.
"……"
"크크, 좀 특이한 자세이긴 하지?"
"잠시, 놓아주겠나…?"
"왜-?"
"조금… 거리를 두고 싶다네…"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 뭐, 형의 성격상으론 충분히 그럴만도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워낙에 부끄럼을 잘 타는 형이다보니까, 자신이 술기운에 이런 걸 했다는 걸 믿기 힘들어서 그런 거겠지…?
"3미터 정도는… 떨어져주었으면 좋겠다만…"
"마스터의 부탁은 다 들어주고 싶지만, 이번만은 예외로 할래-"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대자, 손으로 살짝 밀어내는 형의 행동이 느껴졌다. 정말로 부끄러워하는 것 같아서 조금은 귀여워보이기도 했다.
마스터의 앞에서 마스터가 귀엽다고 당당히 말하면 혼나겠지.
그러곤 아예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는지 형은 얼굴을 나의 어깨 쪽으로 향해 파묻었다.
얼마나 얼굴이 빨개졌으면, 뜨거운 기운이 여기까지 느껴질까.
"…그러면, 잠시 이렇게 있겠네."
"마스터가 편한 대로."
귀여운 형. 정말 끝까지 지켜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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